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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런던] 실업자여, 극장으로 가라

해리 포터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7월15일 전세계 동시 개봉해 현재 개봉 9주차를 맞이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아직까지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영국, 런던이다. 박스오피스 성적도 훌륭하다. 현재(9월 첫째 주, IMDb 자료)까지 이 영화가 영국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5천만파운드(1천억원가량)가 넘는다. 런던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전부 읽었고, 보았다는 리사 마리아를 만났다. 시종일관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마리아는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극장행이라며,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야말로 시리즈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치켜세웠다.

-<해리 포터>를 몇번이나 읽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글쎄. 정확히 세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뭐, 틈나는 대로 읽는다. 기분에 따라 골라서 읽는다고 해야 할까.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돌아와서 꺼내든 책은 첫 번째 시리즈였다. 호그와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해리 포터의 설렘과 나의 그것이 비슷했으니깐.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우울하거나 힘이 들 때 자주 생각나는 시리즈다. 볼드모트가 부활한 세상이, 지금 내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과 닮아 보여서인지 볼드모트를 무찌를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해리와 내가 닮아 보여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고 나면 힘이 나더라.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은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 소설의 팬이라면 영화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을 텐데. =전혀. 물론 소설을 읽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영화에 빠져 있을 때엔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해리 포터>는 조금 다르다. 해리와 그의 다른 친구들, 마법학교 호그와트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쿼디치 경기의 모습 등은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다. 시리즈를 거듭하며 해리가 성장했듯, 영화도 성장하는 것 같다. 훌륭한 감독들이 연출했지만 영국 출신의 신인감독 데이비드 예이츠가 만든 두 작품이 그중 최고인 듯하다.

-데이비드 예이츠가 감독으로 정해졌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엔 신인감독에게 이런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에 반대가 심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영국 내 그의 인지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의 이전 작품들인 <우리가 살아가는 법>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영 비지터스> <섹스 트래픽>을 모두 보았다.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다. 상도 많이 받았고. 사회드라마를 주로 만들어온 그가 블록버스터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만의 새로운 영화가 나오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뭐, 10대 팬들에게는 크게 환영받는 것 같지 않지만. 올해 12살이 된 내 사촌동생은 시리즈 중 가장 지루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두고 성인 취향의 동화라고 하는가 보다. =이 시리즈가 10대용 블록버스터 판타지에 계속 머물렀다면 지금 같은 인기를 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리가 성장하듯 그를 지켜보는 관객도 성장하니깐. 내가 해리를 처음 만난 것은 15살 무렵이었는데, 15살의 나와 23살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또 세상은, 불행하게도 내가 10대 때 생각하던 것처럼 아름답고 좋은 곳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이번 작품의 설정이 특히 흥미로웠다. 밀레니엄 브리지가 무너지고 런던 곳곳이 폭파되는 장면들을 보며 2007년 런던 지하철 테러가 떠오르기도 했으니. 좀 오버스러웠나? (웃음)

-현실 세계에 다소 비관적인 듯 보인다. 직업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 =‘머더 원’이라는 미스터리 전문 서점에서 일했었다.

-‘일했었다’니. =그만뒀다. 아니 해고됐다고 해야 하나. 극심한 경영난 탓에 서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게 지난 1월이니까, 휴, 벌써 8개월이나 지났다. 영국의 실업자가 200만명이 넘었다는 뉴스 본 적 있나? 그중 한명이 바로 나다. 뭐 덕분에 일주일에 3번 이상 극장을 오게 됐지만. 그런데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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