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민권연맹 ACLU 본부 정문에는 왼쪽 제목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단다. “국정원이 저를 상대로 2억원이나 되는 소송을 제기했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시대 고난받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원순닷컴)
살다살다 별꼴을 다 보겠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정보원을 통해 시민단체를 옥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정부가 ‘국가’를 원고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처음엔 무슨 유머난을 잘못 본 줄 알았다. 웃을 일이 아니지만 순간 빵 터졌다. 국정원장도 대통령도 아니고 ‘국가’라니. 어떻게 특정 정부기관이나 현실 권력자가 ‘국가’를 자처할 수 있나. 그동안 정부 인사(농수산식품부 장관 등)가 개인 명예훼손 소송으로 비판 목소리에 재갈 물리던 것도 후딱 깼는데 이젠 ‘짐이 곧 국가’라니.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이다. 어떻게 내가 나한테 소송을 거니?
미국 의회에서 열린 한반도 남북관계 토론회를 마친 박원순 아저씨가 홈페이지에 ‘영광이고 행복이고 고맙다’는 위와 같은 다짐을 올리고 귀국했다. 오. 아저씨 멋진데?(불철주야 아저씨의 매력을 탐구하는 김은형씨, 박아저씨도 주목해줘. 머리숱 말고 머릿속!)
아저씨는 기자회견에서 그간 본인과 주변이 겪은 일을 알렸다. 희망제작소가 행정안전부와 위탁계약을 맺고 일년 넘게 해왔던 지역홍보센터 운영은 어느 날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됐다. 법적, 상식적 근거는 전무했다. 하나은행과 손잡고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그것도 이 정부 들어!) 집행에 들어가 있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도 하루아침에 아무 설명없이 중단됐다. 뒷날 이 은행의 임원은 국정원이 개입해 그렇게 됐다고 귀띔했단다. 뿐만 아니다. 아저씨가 사외이사나 명예이사, 하다못해 특강을 한 곳까지 국정원의 시시콜콜한 사찰과 탐문이 뻗쳤다.
근데 어쩜 좋아. 시민단체에 각종 돈줄이 끊기고 온갖 압력이 들어온 사례는 부지기수고 국정원 개입 증언자도 줄을 섰는데. 혹시 소송 과정에서 진실을 까발려 널리 알리려는 성동격서식 음모가 아닐까. 그게 아니면 ‘국가’분이 물정을 모르시나봐. 박아저씨 같은 스타일이 건드리면 진짜 무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