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절이 올 줄 몰랐다. 비호감도 호통이나 독설도 아니고 싼티가 대세라니. 성인이 된 이후 싼티나 보이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싼티나는 남자 만나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살아온 지 어언 이십년인데 이제 와 싼티 트렌드에 올라타야 하다니 이것이 웬말인가 말이다.
하지만 싼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웃기고 많이 편한 것이라는 의미 변화에 편승해 고백하자면 내 인생은 싼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한마디로 싼티나는 남자한테 끌렸단 이야기다. 물론 쫄티에 기지바지, 한쪽 귀걸이 정도는 아니다. 일대일 맞춤식 서비스(상냥함, 발랄함, 우아함, 골라만 주세요!)로 소개팅 백전백승을 자랑하던 이십대의 내가 대차게 차였던 적이 한번 있는 데 바로 싼티나는 남자한테였다. 임창정을 닮은 남자였다(창정씨, 욕 아니에요). 조금 저렴한 느낌의 외모가 아쉬웠지만 그가 구사하는 저렴한 개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나는 한번 까이고도 그를 잊지 못하고 다시 연락을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확인사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내가 지금 국회방송보다 더 지루한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윤상현이라는 ‘싼티계의 황태자’가 후광을 뿌리며 서 있기 때문이다. 싼티계의 황태자는 붐이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아직 당신은 싼티철학의 초짜라고 준엄히 꾸짖을 테다. 물론 나, 붐도 좋아하긴 한다. 다만 싼티에도 품격이 있다. 가벼움으로 웃음을 짜내는 정도면 싼티의 1차원적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윤상현은 표면적으로 ‘싼티나는 남자’가 아니다. <내조의 여왕>에서 그가 맞춤으로 연기한 재벌 2세 태준이만 봐도 그렇다. 진짜 그의 매력은 태봉이에서 나왔듯이 잘생기고, 부티나고 이런 교과서적 매력 사이로 조금 무식하고, 촐랑대기도 하고, 그래서 때로는 처량하기까지 할 때 윤상현의 매력은 최고조에 달한다.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그의 캐릭터만이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도 그렇고, 비단 캐릭터뿐 아니라 각종 버라이어티 쇼에 나왔을 때 윤상현은 모습도 역시 그랬다.
처음 <상상플러스>에 <크크섬의 비밀> 동료들과 나왔을 때 뛰어난 노래 솜씨로 쌓아놓은 호감을 가벼운 말투와 체신없는 행동으로 갉아먹는 것을 보면서 처음이라 저래? 왜 저래? 싶었는데 여러 예능 프로에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조금 싸 보이는 것의 무한매력’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건 단순한 솔직함과도 다르고, 또 웃기려는 갈망에서 나오는 주접과도 다르다. 처음에는 다소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두세번 보며 익숙해질수록 무한 편해지고 열렬하게 곁에 두고 싶은 그런 매력이라고나 할까.
액자에 걸어두고 싶은 조지 클루니의 부티도 좋지만 나는 옆에서 콕콕 찌르며 킬킬거릴 수 있는 윤상현의 싼티가 더 좋다. 아, 역시 나는 싼티나는 여자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