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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는 장르소설] 오컬트 하드보일드
이다혜 2009-09-17

<폴링 엔젤>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스즈키 고지의 공포소설 <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10년 전, 책대여점집 딸인 친구가 하루는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링> 책이 반납이 안되어 전화를 걸었다. 빌려간 사람은 초등학생이었는데, “책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깊숙한 곳에 숨겨놨다”고 한다. 책을 다시 만지기 싫대서 결국 그 어머니가 반납했다던가.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 엔젤>을 보며 그 얘기가 생각났다.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할 수 없는 최후의 반전은 그렇다치고 책을 지배하는, 나쁜 기운이 들러붙는 듯한 찐득한 기운은 아무리 이성적인 독자라 해도 쉽게 떨쳐내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쉽게 만나기 힘든 걸작 오컬트 소설이라는 말. 이 책의 영화판인 미키 루크 주연의 <엔젤 하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특유의 소름끼치는 느낌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1959년 3월, 13일의 금요일. 사립탐정 해리 엔젤은 뉴욕 5번가 666번지의 한 사무실에서 이상한 의뢰를 받는다. 전쟁에서 식물인간이 되어 돌아와 10년도 넘게 소식이 묘연한 스타 가수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엔젤은 자니의 실종을 파고들다가 그가 부두교의 악마숭배 의식에 깊이 빠져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엔젤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둘 시체로 발견된다.

해리 엔젤은 필립 말로와 루 아처의 적자다. 그의 “사립탐정이라는 건 무정한 직업이다”라는 독백은 무정이 아닌 유정의 선언으로 다가올 비극을 암시하고, 머리가 뻐근해지는 주술의 힘은 책장 뒤에 숨은 구경꾼/독자까지 포박한다. <블루문 특급> <레밍턴 스틸>에서 변주된 80~90년대의 사립탐정은 낭만적인 기질을 가진 바람둥이 캐릭터였지만(그 시대에는 국제적인 스파이부터 정원사, 미래에서 온 살인로봇까지 모두 섹시함으로 먹고살았다), 그들의 선배 격인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은 달랐다. 폭력과 섹스의 한복판,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의 뒷골목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총잡이 철학자들. 해리 엔젤 역시 그렇다. 그가 찾는 자는 누구인가. 이 수상쩍은 의뢰는 왜 그의 문을 두들겼는가. 그가 답해야 할 질문은 과연 무엇이고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폴링 엔젤>은 하드보일드로 시작해 오컬트 호러로 끝맺는데, <파우스트>의 메피트로펠레스를 연상시키는 악의 화신이 등장한다. <폴링 엔젤>을 쓴 윌리엄 요르츠버그는 허황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었을 절대악의 존재를 잘 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