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는 갓을 벗고 서양에서 들어온 문제의 천조각을 머리에 동여맸다. 써보니 관모보다 더 위엄이 느껴졌다. 발견을 스스로 기특해하며 관리는 천조각에 이름을 하사하였다. 아니 불. 높을 아. 놈 자. 이름하여 ‘불아자’.
사실 그건 브래지어였다. 2세기 전만 해도 서양인을 도깨비 취급하던 조선이었으니, 브래지어를 서양식 갓으로 착각하고 ‘뽕’의 개수를 지위의 높낮이로 해석한다 한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문물검역소>는 이처럼 서역만리 신문물을 처음 접하는 조선 관리의 좌충우돌 검역기를 다룬 소설이다. 과거시험을 망쳐 제주로 발령난 선비 함복배는 ‘신문물검역소’에서 신(新)문물의 쓰임새를 밝히는 임무를 맡는다. 여기에 난파한 배에서 살아남은 네덜란드인 벨테부레(조선 이름 박연)가 합류해 큰 도움을 준다. 치설(칫솔)을 치질 치료제로, 곤도미(콘돔)를 골무로 착각하는 민망하고도 우스운 나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혼을 앞둔 제주 처녀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 서늘한 블랙코미디를 장기로 선보였던 강지영 작가는 첫 장편에서 좀더 따뜻하고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 어수룩한 인물들은 사랑스럽고, 신문물의 용도에 대한 상상력은 재치있다. 코미디를 서서히 스릴러로 몰아가는 솜씨도 노련하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는 작품이 나올 듯한데, 그땐 절절한 에필로그만 좀 줄여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