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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젖은 눈빛으로 돌아보라
이다혜 2009-09-17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마음산책 펴냄

우리는 모두 이민자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으로 삶의 뿌리를 옮기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해도 그렇다. 옮겨심기 좋게 뿌리를 내리지 않고 살아남는 데 익숙하다.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면 사랑, 일, 주거, 가족의 문제에서 우리는 어찌나 ‘기꺼이’ 부유하는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이 단순히 인도계 미국인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다. 미국 이민 2세대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 줌파 라히리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야만 굴러가는 가족의 비밀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본국의 가치를 버리지 못한 부모 세대와의 갈등으로 비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이민의 문제와 관계없이 어느 집에서나 맞딱뜨리는 문제들. <그저 좋은 사람>에 실린 한 단편 제목처럼 ‘지옥-천국’인 한 처마 밑에서 너무 오래 서로를 알아왔던 인간들의 이야기.

이 책에 실린 몇몇 단편을 처음 읽었던 몇년 전을 돌이켜보면, 그때보다 지금의 감흥이 더 깊은 건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더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의 자식을 품에서 놓아보내듯, 부모의 삶이 나의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는 때도 온다. 줌파 라히리는 그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연민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담담하게 전한다. 아직 줌파 라히리를 모른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꼭 한번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