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10대 남녀의 풋풋한 로맨스 <미래를 걷는 소녀>
강병진 2009-09-16

synopsis 여고생 미호(카호)는 어느 날 휴대폰을 잊어버린다. 엄마와 찾은 백화점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계단 밑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행방불명된 휴대폰을 찾으려고 미호는 전화를 건다. 수신자는 역시 소설가를 지망하는 도쿄제국대학 학생인 토키지로(사노 가즈마)다. 미호가 듣기에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는 행정구역상 이미 사라진 곳에 살고 있다. 대화를 이어가던 두 남녀는 미호의 휴대폰이 100년 전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를 잇는 통화를 통해 각자의 고민을 나누고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시대가 바뀌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대화라고 해도 이제 와서 편지(<시월애>)나, 무선통신(<동감> <프리퀀시>)으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1세기의 청춘남녀들에게는 휴대폰이 있다. 물론 최첨단의 문명이 낳은 기계라 해도 선뜻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 아니라면 과거와 현재를 이을 수 없다. <시월애>에서 2년의 시간차를 극복해준 건 ‘그냥’ 신비한 우체통이었고, 20년의 시간을 넘나든 <동감>은 개기월식의 신비한 힘을 빌렸다. <미래를 꿈꾸는 소녀>에서는 ‘웜홀’(우주에서 동일한 시공간의 두곳을 잇는 구멍)이 이들을 이어준다. 과학적·물리적 근거를 찾았지만, 달이 떠 있을 때만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걷는 소녀> 역시 초자연적인 현상에 빚지고 있다. 주인공 미호가 SF작가 지망생인 것도 이유가 있는 설정인 셈이다. 연출자인 고나카 가즈야 또한 <울트라맨> <미라맨 리플렉스>등의 SF영화를 주로 만든 감독이다.

10대 남녀의 풋풋한 로맨스를 그리는 영화로서 <미래를 걷는 소녀>의 재미는 무난한 편이다. 숙녀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고 거울 뒷면에 쓴 시구로 마음을 전하는 100년 전의 남자와 21세기의 소녀가 나누는 로맨스는 선배 격의 영화들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이들의 데이트 장면은 아직 휴대폰이 상용화되기 전에 나온 <시월애>나 <동감>이 꿈꾸던 장면일 것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동시에, 동일한 장소를 찾은 그들은 함께 있는 듯 데이트를 한다. <시월애>는 내레이션을 통해 동시성을 강조했지만, <미래를 걷는 소녀>의 두 남녀는 아예 통화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2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닌, 100년의 시간차를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이 두 남녀의 만남을 기대하게 했다면, <미래를 걷는 소녀>는 아예 서로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가정해놓는다. 추억이 될 수밖에 없는 만남이라는 점에서 <미래를 걷는 소녀>는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성장영화의 결말을 끌어냈다. 100년 전으로 날아간 휴대폰 배터리의 성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면 부담없는 청소년용 영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