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Gook for God. 얼마 전 20세기 현대사를 다룬 어느 외국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눈길이 멎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 미군의 철모에 적힌 글자 때문이었다. 매직으로 쓴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신을 위해 국을 죽여라”였다. 미군들이 ‘국’이란 말을 널리 썼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지만 실제 영상으로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국’이란 무엇인가. ‘국’은 황인종을 뜻하는 비속어다. 양키, 쪽바리, 되놈과 비슷한 어감의 말이다. 미군들은 한국전쟁 때에도 남한과 북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경멸적으로 부를 땐 ‘국’이라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국’인가. 내가 알기로는 한국·중국·태국이라 부를 때 쓰는 그 ‘국’의 한자어 발음에서 유래했다. 나라 국(國)인 셈이다.
미군들이 모욕적인 의미에서 ‘국’이라 지껄이건 말건, 한국인들은 ‘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애국’이다. 애국은 한국사회에서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애국’을 배우고, 애국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각종 퍼포먼스에 동원된다. 의심이나 거부는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 하여 고등학교 교사가 정직 처분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애국심은 평생 동안 잘 관리해줘야 할 ‘머스트 헤브’ 품목이다. 연예인 같은 ‘공인’은 더더욱 그렇다.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는 이행하는 것이 좋고, 면제를 받는다 해도 충분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놔야 한다. 애국가는 되도록 4절까지 외워야 된다. 공개 석상에서 태극기를 들 때는 거꾸로 모양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혹시 카메라 앞에서 세계지도를 들고 뭔가 설명할 일이 있다면 동해 표기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sea of Japan’이라고 적혀 있으면 큰일난다. 한민족은 반만년 역사의 순혈민족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마땅하다. 아무튼 어딜 가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말해야 험한 꼴 안 당한다. 2PM의 박재범처럼 안되려면….
얼마 전 사회과학계에 ‘민주적 애국주의’ 논쟁이 일었다고 한다. 애국주의는 언제든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얼굴을 바꾼다는 쪽이 한편이었고, 같은 국민국가에 소속됐다는 연대의식이 정치적 실천의 긍정적 토대가 된다는 쪽이 다른 한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그만 ‘애국’이라는 단어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쪽이다. 과격한가? 아니, 최소한 애국의 양면성에 대한 교육이 학교에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20세기를 ‘전쟁의 세기’였다고들 한다. 20세기는 동시에 ‘애국의 세기’였다. 굳이 개념적으로 ‘애국’의 대안을 찾자면 ‘공공선’이다. 공공선은 국가적 단위에 갇히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함의도 품고 있다. 21세기는 애국의 세기가 아니다. 재범씨, 반성하고 애국자 되겠다는 생각일랑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