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가 새로운 수장을 맞이했다. 지난 7월 강한섭 전 위원장의 중도사퇴 이후 약 두달 만인 9월7일, 문화관광체육부는 조희문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신임 영진위 위원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영진위 1기 때 부위원장과 위원으로 활동한 조희문 위원장에게는 약 10년 만의 영진위 입성이다. 신임 위원장의 취임에 대해 영화계는 대체적으로 아이러니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조희문 위원장은 현 정권의 인수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정권 출범 전에는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 문화정책위원회 위원이었다. 뉴라이트 소속인사였고, 문화미래포럼 영화분과의 주요 인사다.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우려가 단지 정치적 입장 때문만은 아니다. 영진위 출범 전에는 영화진흥법 개정과 영진위 설립을 반대했으며 출범 뒤에는 영진위 축소 혹은 해체를 주장했고, 스크린쿼터 축소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전임 위원장보다는 좌충우돌 없을 것?
이준동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은 “과거에 어떤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영화계의 현안들을 두고 많은 대화를 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크린쿼터 폐지 등 그동안 영화계와 의견을 달리해한 조희문 위원장에 대한 우려다. 또한 그동안 조희문 위원장이 과거 영진위 위원에 대해 “근거없는 비난”을 해왔다는 것도 한 이유다. “당시 위원들을 좌파로 규정하고 그들끼리 나눠먹기를 했다는 식으로 공격해온 사람이다. 과연 영진위 위원장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정윤철 감독은 “정치적인 인선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의 대표적 프로듀서인 황기성 서울영상위위원장이 최종 후보에 들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충격이었다. 조희문 교수는 그동안 영화현장과 동떨어져 있던 사람이다. 영화계를 무시한 인선으로 보인다.”
무관심한 반응도 있다. 한국독립영화전용관 원승환 소장은 “조희문 위원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같은 흐름에서 크게 기대할 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들어 독립영화의 미래가 공적인 역할과의 결합으로 이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생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더더욱 꾸준히 할 수밖에.”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독립영화인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인들도 이제 더이상 영진위에 기대가 없는 듯 보인다”고 말한다. 역시 정권의 정책기조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의견이다. 물론 일정 부분의 기대도 있다. 한 투자관계자는 “전임위원장보다는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조희문 위원장은 투자조합의 기능에 비판을 해왔다. 그렇다고 투자조합을 축소하거나 폐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영진위로서는 투자조합이 가장 강력한 힘 아닌가. 스스로 그 힘을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처럼 당분간 영진위의 사업과 정책에서 큰 변화를 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국정감사가 코앞인데, 일단 그것부터 방어해야 되지 않을까?”
조희문 위원장은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영진위는 한국영화가 발전하고 잘 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라며 “정책을 지향하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로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진흥에 대해 영진위의 발전방향에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생각을 들을 기회가 없다. 영진위 관계자에 따르면 조희문 위원장은 현재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정한 시기로” 미루는 중이다. 다만, 그동안의 인터뷰와 몇몇 글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먼저 던져놓을 수 있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연구 중심으로…” 의견 고수할까
조희문 위원장은 현 영진위의 위원회 합의방식에 대한 불신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문화미래포럼이 2008년 11월 출간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집문당 펴냄)에서 그는 “현 위원회 체제가 실행만 있고, 책임은 없다”고 썼다. “각각의 위원들은 해당사안의 결정에 참여하여 찬반의견을 밝힐 수 있지만 일단 다수결에 의해 확정될 경우 그것을 집행하는 주체는 법인인 위원회가 되는 것일 뿐 위원 각자의 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중략) 이런 점들은 영화진흥자금이나 행정적 운영을 주도 세력의 목표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적인 요소들이다.”(1부 참여정부와 영화정책, 비판적 대안-이념과 선동의 레드카펫을 걷다에서 발췌) 현 9인 위원회 체제를 다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 시사하는 부분이다.
또한 영진위 기능의 축소 혹은 해체에 대해 그는 <씨네21> 709호 인터뷰에서 “민간의 역량이 커진 만큼 조사, 연구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진위의 축소에 대한 입장은 조희문 위원장이 속한 문화미래포럼의 뜻과도 일치한다.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서 김종국 홍익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는 영상문화진흥원(가칭)을 설립해 영진위를 재구성하는 한편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융합시킨 진흥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영진위를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합쳐야 한다는 등의 소문에서 단어만 바뀐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영진위가 운영하는 영화아카데미의 재편성 가능성도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문화미래포럼이 지난 2008년 9월 주최한 ‘예술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란 심포지엄에서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운영위원인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는 영상원의 개선방안에 대해 “영상원과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국가영상교육기구를 최소화한다. 사립대학 영상교육과와 상호관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한다. 영화제작 현장과의 연계 및 재교육기관으로 성격을 전환한다”고 말했다. 조희문 위원장이 가진 직함 중 하나가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공동대표다. 이제 위원장으로 취임한 그가 과거의 소신과 몸담고 있는 단체들의 입김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리에 맞게 발언 자제” 말했는데…
여러 우려 속에도 바람은 있다. 전임 강한섭 위원장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절되어 있던 영진위와 영화계의 소통에 힘써주었으면 하는 것(이준동 부회장), 정치적으로 상처받은 영진위의 위상을 복구시키는 한편, 위원장 스스로 그동안 영화계와의 사이에서 패었던 골과 정치적인 색채를 지우려 노력하는 것(정윤철 감독), 또한 ‘재발명’같은 구호가 아닌 진짜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원승환 소장)는 현실적인 기대들이다.
한 영화관계자는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할 당시,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강조한 만큼 정말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실천을 보여달라고 했다. 무엇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영진위 무용론과 해체설, 통합설 등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조직의 건재함을 보여달라(조영각 집행위원장)는 주문이 많다. 관계자에 따르면 조희문 위원장은 지난 7일, 영진위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영진위에 대한 신뢰를 극복하고 앞으로 개인적인 입장의 이야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자리에 맞게 발언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문 위원장의 새로운 얼굴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