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햇빛을 벗삼아 나돌아다녔더니 피부가 금세 쭈글쭈글하다. 자외선 차단제라도 꼼꼼히 발랐어야 하거늘. 며칠간의 바깥 활동에도 확 티가 나는 피부와 가끔 입에서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이 맴돌 때, 난 내가 늙은 거 같다. 아이돌 그룹 2PM의 리더 재범군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의 4년 전 사적 발언이 문제가 돼 여론 뭇매를 맞고 있다는 걸 포털 초기 화면을 보고 알았고, 이게 뭔 소린가 들여다볼라치니 그새 그는 한국을 떠났다. 나만 빼놓고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은 늙은 거라는데. 재범군이 미국으로 간 게 나는 이래서 서럽다. 힝.
비록 순발력은 떨어져도 지구력은 있는 관계로 이번 일을 되짚어보니, 많이 본 로직이다. 한국 비하 발언->네티즌 분노->한 많은 애국자들 가세->당사자 사과 및 활동 중단->동정론 확산->그렇게 끝, 이 날 줄 알았는데 클릭 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퍼나르는 인터넷 매체들은 2PM 소속사 대표인 박진영씨의 “재범군의 결정을 존중해주자”는 홈페이지 글을 매개로 제2라운드 불을 지폈다. 아니, 클릭 수를 올렸다. 이번에는 ‘청소년 연습생’ 관리 제대로 못한 ‘어른 박진영’씨와 그의 회사가 타깃이다. 곧바로 박씨의 애국심도 도마 위에 오른다.
인터넷을 통한 집단 이지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나, 국가적 자존심 문제로 몰아갈 만한 발언(특히 미 국적자의)이 얽히면 와그르르 ‘트레시 토크’가 쏟아진다. 아이돌 그룹 팬들 사이 알력은 세계대전에 버금가므로 저편 소속으로 한번 찍힌 연예인은 학도병으로 거듭난 이편 팬들의 조직적인 테러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를 비뚤어진 집단주의라 지적하는 자성론이 등장하면, 그 논리를 편 이가 어느 매체에 글을 썼느냐 어떤 정치세력에 속하느냐에 따라 이번에는 틈만 나면 좌파 매국노들을 척결하고픈 애국애족 세력들이 밥 숟가락을 걸친다. 가스통 든 이들도 태극기를 흔들고 안티들도 태극기를 흔든다. 공격성을 풀 길 없는 모든 이들이 태극기로 무장한다. 일체의 해명과 논점을 집어삼킨다. 이 물결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으니 4년 고생이 무색하게 4일 만에 쫓기듯 떠났겠지. 내가 재범군이라도 태극기 없는 곳으로 떠났겠다. 아참, 나는 갈 곳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