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SF 장르에 처음으로 입문하게 만든 작품이 뭐였습니까? 한국 SF소설 팬들의 대답은 비슷비슷할 거다. 대부분의 SF팬들이 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장르의 고전들로 SF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와 함께 SF계의 ‘빅스리’(Big3)로 불리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은 국내에 정식으로 계약되지 않은 채 세번이나 불법 출간된, 이 장르의 클래식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려원에서 90년대 초 출간된 판본으로 이 책을 접했다. 알고보니 이번에 출간된 <여름으로 가는 문>이 국내에서 처음 발간되는 정식 한국어판 완역본이란다. 일본어 중역본의 압축본을 오리지널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장르팬이라면 다시 구입하는 게 거장에 대한 도리다.
SF장르의 팬이 아니라도 <여름으로 가는 문>은 아무런 부담이 없는 책이다. 궤변과 하드SF적 설정이 많아진 후기 하인라인의 작품과 달리 <여름으로 가는 문>은 고색창연한 시간여행 모험담이자 아찔한 로맨스다. 피트라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천재공학자 댄은 여성을 가사노동으로 해방시킬 가사도우미 로봇을 발명했다가 약혼녀 벨과 사업동료 마일즈의 꾐에 넘어가 강제로 냉동수면당한다. 30년 뒤 깨어난 피트는 복수를 위해서, 잃어버린 동반자인 고양이 피트를 되찾기 위해서 다시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결심한다. 소설의 현재 시점은 1970년이고 30년 뒤 냉동에서 깨어나는 시점은 2000년이다. 지금 읽으면 먼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설정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여름으로 가는 문>은 이야기꾼으로서의 하인라인의 장점이 멋지게 살아 있는 동시에, 현대 시간여행 SF코미디와 로맨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이다. 좋은 이야기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출판사는 이 책을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놓쳐서는 안될 SF의 고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고양이 열풍에 올라타려는 거짓 나부랭이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 중 하나인 고양이 피트는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양이 종족이며, 책의 시작과 끝도 이 영특한 고양이의 몫이다. 겨울을 싫어하는 고양이 피트는 어딘가에는 따뜻한 여름으로 가는 문이 하나쯤 있을 거라 믿는다. 주인공은 말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피트.” 읽은 지 20여년이 지났는데도 이 마지막 대사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언젠가 영화감독이 된다면 꼭 이 소설을 데뷔작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었다. 영화감독의 꿈은 애초에 포기했다. 그런데 이걸 다시 읽다보니 허망한 꿈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