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신기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맥주, 스파게티, 야구, 재즈를 좋아한다는 것. 한 작가를 좋아하기 이전에 비슷한 취향으로 묶여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루키의 장점이다. 그는 취향을 매력적으로 전시하는 방법을 알고, 그로부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반면 ‘과잉된 스타일로 옅은 깊이를 감추려 한다’는 비판도 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키 문학을 얘기할 때 이와 같은 ‘깊이 논란’은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5년 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1Q84>는 이러한 논란을 어느 정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984년의 평행 세계인 ‘1Q84’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제목만 봐서는 <해변의 카프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환상성을 기대하기 쉽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그 어느 때보다 리얼리티가 풍부하고 문학적 깊이가 느껴진다. 여자 암살자 아오마메와 작가 지망생 덴고가 주인공으로, 이들은 각자 다른 동기로 사이비종교 ‘선구’의 어두운 실체와 마주한다. 24장씩 총 2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권에서 아오마메와 덴고의 과거를 비중있게 묘사하며 그들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평행세계가 주제임에도 1권 20장이 되어가도록 이렇다 할 판타지가 보이지 않는 점에 조금 놀랐다고 할까. 아마 본격적인 평행세계는 9월8일 발간되는 2권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