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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의 꿈과 희망 <핑크토끼>
김성훈 2009-09-09

synopsis 성인방송에서 가슴의 털을 보인 이유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에로배우 다해(고다미). 복지사의 지시로 그녀는 자해공갈로 한쪽 팔이 부러진 백한근(권철)의 집으로 찾아간다. 물론 복지사도, 다해도 그가 사기꾼인 줄 모른다. 이때부터 내키지 않은 걸음을 한 다해와 복지사들 사이에서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백한근, 둘 사이의 티격태격 만남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점점 정이 들고 가까워진다. 심지어 돈이 없어 집주인에게 쫓겨난 다해가 백한근의 집으로 들어와 살기까지 하는데. 과연 이 둘은 잘 지낼 수 있을까.

퇴물들끼리 만났다. 신선한 신인 에로배우들에게 밀려난 다해나 차에 치여 자기 몸 다쳐가며 합의금 뜯어내는 백한근이나 하는 일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만큼 여유도 없다. 그저 누구는 법원에서 내린 기한 동안 ‘봉사’를 해야 하고, 또 누구는 팔이 나으면 또 차에 치여 돈을 뜯어내야 한다. 하루살이처럼 매일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는 데 정신없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난 건 어쩌면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더이상 내려갈 곳 없는 인물들이 서로를 통해 위안을 얻고, 꿈을 가지게 된다는 결론을 향한.

그 다음부터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티격태격하다가 가까워지게 되고, 갑자기 터진 위기로 균열이 생기지만 잘 극복하는, 그런 전형성을 따라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런 영화일수록 캐릭터와 소소한 에피소드의 세심한 묘사가 요구된다. <핑크토끼>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굳이 에로영화 촬영장에서 조감독이 항의하자, 감독이 “나 아카데미 15기야. 네가 앵글에 대해 뭘 알아”라고 화를 내는 장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위기를 고민하고 극복하는 방식에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다해 동생의 합의금을 해결하기 위해 백한근과 그의 동료가 자신들의 장기인 ‘자해공갈’을 선택하는 장면이나, 역시 동생을 구하기 위해 에로영화를 찍는 다해를 악덕업자로부터 너무나 쉽게 구출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는 결론을 위해 이야기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루저들이 만나 서로에게 힘과 희망이 되어주는, 그런 의도는 잘 알겠다. 그러나 극속 다해나 백한근이 고민하는 만큼 관객의 가슴에까지 진심이 느껴질지는 의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규모가 크고 작고가 아니라 만듦새를 위해 치열한 고민을 했나 안 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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