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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웃음이자 통렬한 풍자극 <황금시대>
김용언 2009-09-09

하나의 추상적인 주제 아래 만들어지는 옴니버스영화의 매력이라면, (상업 장편영화에서는 좀처럼 드러내기 힘든) 각 감독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재미일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작이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황금시대>는 지난해 세계적인 불황 쓰나미의 여파를 톡톡히 맛보는 대한민국에 바치는 쓰디쓴 웃음이자 통렬한 풍자극이다.

최익환 감독의 <유언>은 자릿세도 뺏기고 중국의 쓰레기 음식에 속은 음식점 사장의 자살 소동을 희극적인 원-신-무비 형식으로 풀어낸다.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은 10대 흡연문제를 취재하려던 기자가 담배 피우는 여중생과 난폭한 노숙자와 엮이면서 겪는 끔찍한 아이러니를 묘사한다.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은 ‘격정청춘물’로 묘사된다. 학교의 소문난 ‘걸레’ 소녀를 짝사랑하던 소년은 그녀와의 첫 데이트에 가슴 설레지만 곧 철저한 배신감을 맛보고, 청춘의 열병은 파국을 불러온다.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은 주식과 보험살해, 가정파탄 등의 연속적인 붕괴를 단 몇분 동안 부부 사이에 오가는 대사와 몸짓으로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김은경 감독의 <톱>은 매혹과 두려움 사이를 헤매는 청년의 기이한 하룻밤을 공포물의 관습에 충실하게 그린다.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은 인디언으로 분장한 청년들과 액션 히어로 코스프레, 영어를 남발하는 가짜 상속녀 등을 나이트클럽에 몰아넣고 ‘너희들의 배후는 누구냐’며 낄낄거린다.

채기 감독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는 집도 가진 것도 없이 도시 곳곳을 떠도는 노숙자의 생존의 몸짓을 아름답고 느릿하게 포착한다.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은 배우 임원희, 평론가 진중권(팝 칼럼니스트로 등장), 영화평론가 유운성(잠복근무 중인 형사로 등장) 등이 빚어내는 로또 광풍에서 미칠 듯한 폭소의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김성호 감독의 <Penny Lover>는 뮤지션 조원선이 그녀 특유의 나직한 노래와 더불어 연애의 쓰라림에 상처받는 연기까지 겸한 독특한 멜로물이다. 김영남 감독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마음 약한 공장 사장으로 분한 오달수와 3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직원 조은지 사이의 신경전을 너무 슬프지도 않고 너무 웃기지도 않게 품어낸다. 장르와 주제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중에서 굳이 추천한다면 <시트콤>과 <신자유청년>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이다. 물론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추천작은 달라질 수 있음을 굳히 밝혀두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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