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황금시대>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한 진중권씨는 경비행기 마니아다. 그의 블로그 메인 화면엔 비행기 사진이 크게 떠 있다. ‘논객 진중권’의 날카로운 독설과 함께 ‘비행기 조종사 진중권’의 다소 감상적인 비행일기도 만날 수 있다. 바람과 구름의 변화, 이륙과 착륙의 순간들이 위태롭거나 담담하게 펼쳐진다. 잇따라 대학에서 퇴출당하는 그의 소식을 접하며 하늘을 날다 심하게 흔들리는 그의 경비행기를 상상했다.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누군가의 음모. 날개는 조금 부러졌지만, 조종사는 호락호락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현실에서 그는 계속 비행할 것이다.
경비행기의 이미지는 다시 어떤 여배우의 얼굴과 겹쳐진다. 고 장진영씨다. 2005년 12월 개봉된 <청연>의 포스터에서 비행고글을 쓴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는 식민지 시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연기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비행을 무산시키려는 누군가의 마법 같은 주문이 시작됐다. 마른하늘에 폭풍우가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날개만 조금 부러지지 않았다. 동체는 산산조각났고 추락했다. 영화 속 인물 박경원의 비행기가 1933년 8월7일 아침 일본 하코네 산중턱에 부딪쳐 사라졌던 것처럼.
고 장진영씨의 작품들을 꼽아보면서, 그녀는 아직도 <청연> 때문에 섭섭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친일파 미화 논란’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흥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맥없이 바스라졌다. “일본 유력인사의 은혜를 입어 비행기를 몰 수 있었고 일본의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는 일만연락비행(日滿連絡飛行)에 참여했다”는 따위의 공격이었다. 박경원은 분명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국주의의 치어걸’이라는 말까지 동원하며 친일파로 몰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분법적 친일 여론재판의 전형이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의 잣대로 그녀를 평가하는 건 자유지만, 꿈을 이루고자 했던 한 여인의 삶에 천착하고자 한 영화적 의미까지 송두리째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이명박 정부의 총리 후보로 정해졌다는 뉴스가 들린다. 어쩌면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그가 입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만 한다면 왠지 경망스럽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한때 대중은 장진영의 그 영화에 경망스럽게 반응했다.
영화 속 비행기 이름인 ‘청연’(靑燕)은 바로 장진영의 느낌을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단어다. 장진영은 ‘청연’스럽다. 푸른제비…. 청아하고 싱그러운 희망을 실어나르던 깨끗한 미소의 여인. 푸른제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