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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읽는 장르문학] 다아시가 좀비 헌터라니...
장영엽 2009-09-03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해냄 펴냄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이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이하 <그리고 좀비>)의 첫 문장은 어떤지 한번 보자. “한번 뇌를 먹어본 좀비가 더 많은 뇌를 원하게 된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책 제목과 도발적인 첫 문장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좀비>는 오스틴 특유의 클래식한 연애소설에 좀비와 닌자 등의 하위문화를 토핑한 코믹소설이다. 역병이 창궐해 좀비들이 들끓는 19세기 영국, 홍차와 수다를 즐기고 사랑의 완성을 꿈꾸던 베넷가의 숙녀들은 어깨엔 머스킷총을, 가슴엔 좀비를 위한 단도를 품은 여전사로 다시 태어난다. 전세계 여성들의 영원한 우상 미스터 다아시는 위대한 좀비 헌터로 등장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그저 제인 오스틴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빌린 완전히 다른 종류의 좀비 소설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좀비>는 원작 <오만과 편견>을 펼쳐놓은 다음, 문장 사이사이에 좀비 이야기를 삽입한 것 같은 작품이다. 좀비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오만과 편견의 과정을 거쳐 사랑을 쟁취한다’는 메인 플롯을 뒤바꿔놓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캐릭터의 본질도 마찬가지로 그대로다. 사기꾼 바람둥이 위컴은 여전히 야비하고 능글맞으며, 엘리자베스의 사촌 콜린스는 여전히 뻔뻔하고 고지식하다.

그런데 약간의 첨가된 문장이 꽤 신선한 변화를 가져온다. 원작에서 땅과 돈, 교양과 신분이 사람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였다면, 이 소설에서는 무술이 그만큼이나 중요한 가치 척도로 등장한다. 이에 따라 <오만과 편견>에서 지성미가 매력적이었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의 미덕은 <그리고 좀비>에서 백전불패의 무술 실력으로 거듭난다. 그녀에게 여전사 호칭을 부여한 만큼 이 소설에는 크고 작은 격투신이 등장하는데, 특히 다아시-엘리자베스의 취권과 부지깽이 공격신, 닌자-엘리자베스의 일대일 격투신, 캐서린 영부인-엘리자베스의 최후의 대결신은 마치 영화화를 생각하고 쓴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마침 요즘 연출 분야에 눈독을 들이는 배우 내털리 포트먼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렇다면 포트먼 주연의 여전사 엘리자베스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콜린 퍼스 주연의 ‘좀비 헌터 다아시’도 보고 싶기는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