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만, 노골적인 제목을 단 책의 저자는 출세하려면 본적부터 파야 한다는 위협을 먹고 자란 전라도 깽깽이가 아니다. “전라도 사람이란 빨갱이랑 일본 놈 다음으로 나쁜 피를 받은 종족”이라는 유년 시절의 확신은 비교적 뚜렷했고, 무엇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자처했던 그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1983년 자신이 응원했던 팀의 욱일승천 기세를 빼앗은 뒤 몰락을 걷게 만든 천적이었다. ‘빨갱이에 대통령병 환자’라는 낙인이 찍힌 김대중의 행보와 ‘해도 해도 너무하는’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행진. 그는 무엇하러 깽깽이들만의 아이콘을 “최강이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가장 약한 영웅을 추억한다”는 치사와 함께 불러들인 것일까.
‘꺾인 현실의 날개’였던 김대중과 ‘날아오르는 희열’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20년이 교차하는 동안(흥미롭게도 두 호남 아이콘의 흥망 곡선은 마술처럼 정반대다. 역시나 ‘선상님’이 떠나신 2009년, ‘호랭이들’이 다시 뛰고 있다) 저자가 정작 들춰보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젊은 날이다. 얼굴을 300바늘이나 꿰맸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서도 한국시리즈에서 거짓말 같은 홈런을 쏘아올린 김봉연, 브라보콘 만들다 치어리더로 차출된 여성노동자들, 5월18일만은 절대로 해태 타이거즈에 홈경기를 허락하지 않던 정권, 빙그레 선수였던 동명이인 김대중을 연호하던 호남 야구팬 등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즐비하지만, 정작 이 모든 해프닝을 추억할 수 있는 건 아스라한 시간 때문은 아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돼야 즐길 수 있다던 프로야구를 5월 광주의 핏자국을 덮기 위한 정치 술수로 20년 빨리 접했던, 그로 인해 불필요한 애증을 그라운드에 쏟아부어야 했던, 30대 중반의 저자가 뒤늦게 쓴 청춘일기는 용감무쌍 대의를 이루진 못했으나 프로야구만큼은 어느 세대보다 열광했던, 어정쩡한 동시대 70년대생들과 90년대 학번들에게 바치는 연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