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펄밭 가운데 들어선 거대한 공장지대.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두 남녀가 있다. 남자(박지환)는 5만원씩 받고 공장 노동자들에게 여자(장리우)의 몸을 판다. 두건 쓴 손님들의 아랫도리를 받아들인 대가로 여자는 소시지와 짬뽕국물을 얻는다. 낮에는 공장 주변에 매춘 전단지를 몰래 붙이며 소일하던 여자는 앳된 눈동자를 가진 중국집 배달부(오근영)를 알게 되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 몰래 그녀 곁으로 떠난다.
김곡 감독(과 그의 쌍둥이 동생인 김선 감독)은 지금까지 기존의 상징체계를 교란하는 장난기 넘치는 실험들을 거듭해왔다. 김곡 감독이 홀로 연출한 첫 번째 장편 <고갈>은 14편에 달하는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평이하지만, 그렇다고 안도할 수준은 아니다. 잘라 말하면, <고갈>은 판도라의 신화를 거부하는 영화다. 희망 따윈 없고, 구원 또한 애당초 불가능하다. 씁쓸한 웃음 정도로 갈무리되겠지, 하는 예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엄청난 매연을 뿜어올리는 커다란 굴뚝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뒹구는 오프닝에서부터 “불안의 이미지를 캐스팅했다”는 감독의 태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싸우는 것인지, 장난치는 것인지, 섹스하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뿌연 잿빛 아래 한데 얽힌 시커먼 몸뚱이들. <고갈>의 인물들은 실체적 존재라기보다 부유하는 유령에 가깝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나쁜 남자>와 <오아시스>의 어딘가에 자리할 수 있을 듯 보이지만, <고갈>의 ‘비타협’ 선언은 기대를 배신하고 극단으로 내달린다.
악몽을 현실에 고스란히 판박이하려는 <고갈>은 “고감도의 슈퍼8mm필름으로 촬영한 뒤 블로업(blow up)” 한 영화다. 인물과 인물, 인물과 공간의 윤곽을 의도적으로 거칠게 뭉개버린 비주얼이 맨 먼저 눈에 띌 것이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 이후 독특한 비주얼은 자주 언급되어왔다. 하지만 <고갈>은 주의깊게 봐야 하는 영화라기보다 귀기울여 들어야 할 영화인 듯하다. 대사는 거의 생략되어 있고, 그 자리에 사운드가 들어서 있다. 불모의 땅을 한없이 파헤치는 굴착기 소리에 맞춰, 불안을 마임으로 연기하는 인물들은 먹고 싸고 때리고 섹스한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고(이 영화에서 조롱은 가혹한 자해다), 슬프지만 울 수 없는(이 영화에서 동정은 모호한 술래잡기다) 독립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