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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로마] 로마의 휴일? 극장도 휴일

이탈리아에서는 게이 결혼에 대한 찬반 논쟁이 새로운 가족 개념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게이들의 인권보호와 법적인 대우를 주장하며 게이를 정당의 간부로 끌어들이는 좌파정당은 이미 정당 설립 당시 게이 표를 얻기 위해 게이연합과 손을 잡았었다. 요즘은 보수정당도 게이를 정당내부로 끌어들이는 추세이다. 움베르토 카르테니의 최근작인 이탈리아 코미디영화 <디베르소 다 키?>는 이같은 이탈리아의 정치상황을 다룬 영화다. 그런데 관객을 만나러 상영관을 찾았더니 단 한명도 없다. 여름 휴가 때면 대법원도 문을 닫는 게 로마다. 상영관의 5분의 1은 휴업 중이다. 관객도 없다. 같은 영화를 두번이나 보러 가서야 텅 빈 극장에 앉아 있는 5명의 관객 중 로렌조 델리 인노첸티를 만날 수 있었다.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어제는 혼자서 영화를 봤다. =로마는 휴가 중이니까. 많은 영화관이 문을 닫고 사람들도 휴가 중이고… 이탈리아인들은 여름에 바다에 가지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나는 바다를 싫어하고 내 직업은 연중 휴가니까….

-무슨 일을 하나. =20년 동안 연극과 영화배우를 하고 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고르고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배고픈 일이다. 영화계 예산이 줄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욕마저 줄고 있다. 영화를 세편 찍었지만 모두 돈을 받지 못했다. 경험삼아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직접 만든 다큐도 있다. 이탈리아 연극배우인 아르놀드 포아의 삶을 다룬 다큐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 홍보차 참가할 거다.

-생활비는 어떻게 하나. =이대로 가면 이 일도 더이상 할 수 없을 거다. 생활비는 수영코치를 하면서 벌고 있다.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운동할 수 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습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 영화를 보러 온 이유는. =친구들이 좋다고 했고 딱히 달리 볼 영화도 없고….

-영화를 볼 때 직업의식을 가지고 보나.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가 마음에 들면 영화를 보고 배우의 연기는 나중이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뒤져 누가 만들었는지 내용이 어떤지를 보고 결정한다.

-이 영화는 어땠나. =아주 좋았다. 이탈리아 정치 위기를 꼭 집어주고 있다고 할까? 이 영화는 이탈리아 정치판에 대한 풍자다. 좌파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게이를 시장 후보로 내세우고, 시장 후보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에 부딪힌다. 영화는 ‘정치는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보수파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가 세운 벽 앞에서 연설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가장 현실적인 이탈리아 정치계의 모습이다. 내가 조금 흥분했나?

-왜 그렇게 흥분하나. =어제는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국제 테러리스트였던 사람이 리비아에서 환영을 받았다. 람페두사를 통해 이탈리아로 불입국하려던 아프리카 난민 73명이 바다에서 죽었다. 이탈리아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 다른 사람들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처럼, 살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을 방치한다.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이 이탈리아 수상인 베를루스코니를 만나러 로마에 온 게 지난 6월이다. 카다피는 로마의 그랜드호텔을 마다하고 판필리공원에 천막을 쳤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이 호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로마 시내는 마비됐고 로마대학 학생들은 연일 시위를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리비아 해군에 함대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리비아 해상을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난민을 막아달라는 협약을 받아냈다. 해류를 타고 해변가로 떠내려오는 시체를 건져내며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반인류적이다. 이럴 때는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이 수치스럽다.

-영화 이야기는 안 하고 정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영화가 정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이탈리아 정치의 은밀한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