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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로카르노영화제는 죽었다

제62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한 샤올루 구오 감독

영화제는 조용히 죽어간다. 죽어버린 행성처럼 하늘을 맴돌며 아직도 활기찬 외양을 보여주지만 이미 그 내부는 싸늘하게 식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지만, 2009년 8월 로카르노영화제는 죽었다. 여전히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이 모여들었지만.

로카르노의 전성기는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였다. 모리츠 데 하델른(이후 베를린영화제를 이끌었던)과 데이비드 스트라이프(이후 스위스 문화부 장관이 되었던)가 예술감독으로 영화제를 이끌었던 당시, 영화제에는 축제의 기분과 진정한 발견이 존재했다. 1990년대 마르코 뮐러(현재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가 예술감독이었을 때 영화제는 좀더 학구적이 되어갔고, 1990년대 후반, 오랜 기간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라이몬도 레조니코와 매해 생산적이지 못한 싸움을 벌이던 뮐러의 후반기에 이미 조금씩 쇠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 이탈리아 언론인 이레네 비냐르디가 자리를 차지하면서 영화제는 꼭 필요했던 차분함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2년여 뒤 영화제를 국제영화제에서 일반적인 문화포럼으로 바꾸려 하면서 그 초점을 잃었다. 2006년 약 20년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일해온 스위스인 프레드릭 마이르가 예술감독이 되면서 국제적 경험과 비전의 부족 탓에 로카르노는 점점 더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올해로 나는 18번째 로카르노를 찾았다. 이렇게 초점없는 라인업을 본 건 처음이었고 다른 언론계 동료들도 이에 동의했다.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았던 열흘 동안 내가 본 영화들은 가치관의 혼돈, 소외, 우울함, 사회적 기능 장애 등의 이야기를 담은, 공허하거나 과시적인 영화들이었다. 국제경쟁부문의 영화 한편만이 돋보였다. <나싱 퍼스널>이라는 저예산 네덜란드영화로 폴란드 감독이 아일랜드에서 영어로 만든 영화였다. 그마저도 다른 영화제에서 봤으면 그저 괜찮은 데뷔영화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홍상수 감독도 포함됐던 심사위원단은 놀랍게도 골드 레오파드상을 중국 출신 영국 작가인 샤올루 구오의 첫 내러티브영화 <중국 여자>에 안겨주었다. 중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던 중국 여자가 영국에 건너오는 이야기인 이 저예산영화는 그녀의 책에서와 똑같은 문화적 클리셰에 의존한다. 딱딱한 대화, 뻣뻣한 연기에 말도 안되는 구조 등 영화를 만드는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보여주지 않는다.

로카르노 심사위원들이 슬프리만큼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유명한 예로 2003년 심사위원단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무시하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말도 안되는 영화에 상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이른바 말하는 ‘독립’영화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올바름에 집착해서 결국 국제적으로 완전히 그 의미를 잃어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영화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런 근시안적 태도가 스위스적 전형성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로카르노영화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내년에는 칸 감독주간을 이끌었던 프랑스인 올리비에르 페르가 예술감독 자리를 맡게 된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완전히 영화제를 쇄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그램 위원회 구성원들을 바꾸고 영화 수를 줄이면서 세개의 대표 부문 (국제경쟁, 피아차 그란데 야외상영과 회고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영화제에 새로운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스타트렉>의 어느 에피소드에서처럼 페르가 63살된 로카르노라는 죽어가는 행성에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자.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