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을 즈려밟는 거대 괴수도, 한순간에 모든 걸 끝내버리는 핵무기도 아니다. 대신 어떤 물리법칙에도 영향받지 않고, 총탄도 레이저포도 통하지 않는 지름 2m 정도의 구, 완벽하게 둥글고 새까만 구가 시속 4km로, 아주 천천히 다가와 인간을 흡수한다. 세계 멸망의 전주곡이라기엔 좀 완만하지만, 그 완만함 때문에 더욱 소름이 끼친다.
1억원 고료의 제1회 멀티문학상을 거머쥔 장편소설 <절망의 구>는 어둡고 날카로운 상징들로 가득하다.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에서 동화 같은 감성을 보여준 김이환 작가의 팬들이라면 적잖은 이질감을 느낄 법하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섬세하고도 냉정한 필치로 파고든 점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들을 연상시키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스토리 전개와 ‘검은 구’의 존재는 긴장과 함께 다양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장르적인 즐거움, 그리고 누구도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아야 하는 데서 오는 피학적인 즐거움(?)까지.
딱히 한 가지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2009년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은 그 자체로 충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블랙홀인지, 신무기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절망의 구’는 그 모든 불안과 공황을 한데 뭉친 덩어리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단지 ‘절망의 구’를 물리칠 해결책이 없다는 게 다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세상이 여전히 평화롭단 말인가?’ 주인공이 의아하게 중얼거리는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서글픈 시대상이 심상치 않다. 여전히 생존자들이 있음에도 ‘세계는 멸망했습니다’라는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 국민의 목숨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 그러나 가장 끔찍한 건 절망의 구에 쫓겨 달아나면서 점점 그 구를 닮아가는, 자신 속에 잠재된 구를 보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해 도망치는 것으로 끝난다. 마트에 갇힌 30대 남자와 20대 청년의 아주 짧은 연대는 찰나의 희망을 제공하지만, 그 희망이 지속되기에 작가가 바라본 이 사회는 너무 각박하고 비정하다.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을 것이다. ‘왜? 도대체 왜?’ 이 이야기가 단지 ‘영화화하기 좋은, 흥미진진한 재난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구에 흡수되기 싫다면, 해답은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