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위시한 예술이 국가에 거역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작곡가가 더이상 궁정에 경제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다음의 일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이전에는 경제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차르트나 하이든 같은 경우, 귀족의 편이었는지 서민의 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한 구분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졌는가보다는 오히려 음악가의 외적인 상황에 따라 좌우되었다. 클래식 음악해설서이자 역사서인 베로니카 베치의 <음악과 권력>은 유명한 작곡가들이 돈 때문에, 권력자들 때문에 겪은 다양한 일화를 엮은 책이다. ‘누구의 어떤 작품이 예술적으로 뛰어난가’라는 익숙한 주제를 떠나 어떤 작곡가들이 세상의 흐름에 어떻게 순응하거나 저항하며 살았는가를 담았다. 독일의 음악학자인 베로니카 베치는 클래식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권력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특히 이 주제가 현대 독일, 그러니까 대중 선동에 있어 예술적 경지를 획득했던 히틀러의 시대에 이르면 영욕의 음악사는 한층 무거워진 울림을 들려준다.
역자 서문은 명지휘자였던 푸르트뱅글러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나면 다음날 여지없이 나치 부대의 군화 소리가 울려퍼졌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실제로 이 책이 무게있게 다루는 주제도 반유대주의와 나치즘, 그리고 타락한 음악과 수용소의 노래들에 대한 대목이다. 베치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매도하기보다는 균형감있게 역사적 사실을 그리고자 노력하는데, 미워할 수도 마냥 포용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재능에 대한 이해의 안간힘이 인상적인 건 그래서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를 살피는 것 말고도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클래식 작품에 숨은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도 부지런하다. “나의 소원, 그리고 나의 희망은 명예, 영광, 그리고 돈을 버는 것이다”라는 모차르트의 말은 물론이고,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원래 군가였다가 혁명가가 된 상황, 바흐의 <음악의 헌정> 탄생 비화, 유대인 음악가들이 이름을 바꾼 경위,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과 그에 숨은 질투(이 책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대목이다). 책 말미에는 윤이상의 일화도 잠깐 소개된다. “작곡가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무심할 수 없다.” 이 두툼한 책이 담은 이야기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