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주한 멕시코대사관과 공동 개최하는 제10회 멕시코영화제가 9월1일부터 6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루이스 브뉘엘이 멕시코 거주 시절에 만든 작품들을 상영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멕시코 출신 감독들이 자국에서 만든 최신작들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1999년에서 2008년 사이에 만들어진 총 6편의 영화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멕시코의 현재를 바라보는 영화들인데, 특히 인접 국가 미국과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 안에서 서사를 풀어가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패트리샤 리겐의 <언더 더 쎄임 문>(2007)과 후안 카를로스 마틴의 <40일>(2008), 그리고 루이스 벨레스의 <타인의 땅>(2007)이 대표적인 경우다. <언더 더 쎄임 문>과 <40일>은 모두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는데, 전자는 그걸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들의 현실 속에서, 후자는 삶의 뿌리를 잃고 떠도는 멕시코 젊은이들의 정체성과 함께 다룬다. <언더 더 쎄임 문>에서 소년 카를리토스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일하는 어머니를 찾아 홀로 미국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는 소년의 고단한 여정의 드라마에서 감정을 길어올릴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생계를 이어가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빈곤한 삶과 이들에 대한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날선 풍자로 들여다본다.
<40일>은 출구없는 일상에 지친 상처받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여행기를 사진첩처럼 펼쳐놓은 듯한 영화다. 이들이 탄 낡은 자동차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카메라가 한편에 있다면, 영화 속 인물이 각 장소의 이미지를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하는 비디오카메라가 다른 한편에 있다. 두 종류의 화면이 교차하면서 현재 미국의 풍경이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사적이고 시적인 시선을 경유하여 묘한 정취 속에 하나둘 쌓여간다. 한마디로 불균질한 방식으로 구성된 로드무비인데, 이를테면 여기에는 태풍으로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의 싸늘한 풍경과 백악관 앞에서 미국의 절대 권력을 비판하는 인물들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뉴욕의 거리를 공허하게 비틀거리는 감정적인 얼굴들이 있다. 여행을 통한 인물들의 가슴 아픈 성장기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동행한 길의 흔적이 무척 아련하고 아름답게 찍혔다.
한편 <타인의 땅>은 과거, 현재, 미래를 교차하는 남미 특유의 형식을 취하면서 1848년으로부터 현재의 시간을 포괄하는 야심찬 서사로 구성된다. 텍사스가 미국령이 된 과거의 시점을 중심으로 어느 멕시코 가문과 미국인 사이에 얽힌 비극의 반복을 멜로드라마적 형식 속에서 풀어가는 영화다. 사랑과 증오, 운명과 복수 등과 같은 뻔한 틀이 다소 작위적이지만, 빼앗긴 땅에 대한 멕시코인들의 자의식이 절절하게 전달된다.
이 밖에도 루이스 에스트라다의 <헤로드의 법>(1999)은 어느 마을, 부패한 정치인의 뒤를 이어 시장으로 임명된 평범한 남자의 의지가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1990년대까지 멕시코의 주요 세력으로 군림했던 제도 혁명당에 대한 정치적인 풍자로 당시 멕시코에서는 논쟁의 대상이었으나 해외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은 바 있다. 파코 델 토로의 <흉터>(2005)는 좀더 일상적인 맥락으로 시선을 돌려 멕시코 중산층 가정의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가정 안의 폭력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낱낱이 폭로하는 이 작품은 영화 미학적인 성취보다는 직설적인 방식으로 교훈과 계몽에 치중하는 영화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