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2000년을 전후로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죠. 근데 그건 이국 취향이라는 별로 좋지 않은 이유에서 기인된 게 아니었던가요?” 어제 저녁 만난 어느 한국 학생이 내게 던진 말이다.
난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이런 유의 질문은 말하자면 나 같은 서양 사람은 한국 작품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을 저변에 깔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받은 교육상 쓸데없는 표면적인 것만 포착하는 걸 면치 못한다는 소리다. 일단 질문에 대한 짜증스런 기분이 가라앉은 다음 생각해보면 이런 지적에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중요한 영화들을 꽤 많이 내놓았다. 그 예로 임권택 감독은 <만다라> <티켓> 등 그의 대표작들을 이미 촬영 중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작품을 프랑스 영화관에서 볼 수 없었다. 한국영화가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은 바로 여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만 한데, 거기엔 타당한 논리마저 세워져 있다. “한국영화는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좋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한국영화가 너무 미묘해서 외국 관객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기 못하는 것이다”라는…. 그러나, 콰과광! 2000년을 분기점으로 한국영화가 해외 여행을 시작함으로써 그와 같은 논리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나 같은 코쟁이들이 한국영화에 큰 코를 들이대며 관심을 보이고, 각종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를 프로그램에 넣는가 하면, 한국영화가 라틴 쿼터(파리의 대학가 지역)에서 나누는 끝없는 대화의 주제가 되거나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훌륭한 이론연구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한국영화가 좀 덜 한국적이게 됐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외국인들의 머리가 좀 영리해졌다는 소리? 그것도 아니면 외국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이해한다고 착각한다는 소리? 이런 의문점을 가득 담은 토양 속에서 이 “이국적” 식물인 한국영화는 대답 대신 묵묵히 자라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취화선>, 이 비정형적이고도 불타는 듯한 두 작품이 식물이 자라나는 데 자양분이 돼주었다.
이국 취향이란 것은 수도 없이 많은 수준 낮은 작품과 몇몇 대작들로 뒤덮인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거기서 한국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서양 사람들이 환상을 품었던 나라는 한국이 아니다. 아프리카(플로베르), 아라비아(마티스), 인도(키플링), 일본(푸치니), 중국(앙드레 말로) 혹은 타이티(고갱) 등의 나라였다. 외국인들의 환상은 결코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네 어린 아이들은 세헤라자드를 꿈꿨고 푸만추의 길고 구부러진 손톱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달콤한 꿈속에도, 그들이 꾸던 악몽 속에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누누이 말하지만 중국이나 프랑스와는 반대로 한국은 우리네 이국 취향이라는 역사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형 <와호장룡>도 없었고, 미식가 생쥐 라따뚜이처럼 자기를 전주의 별미 비빔밥이라 이름하는 생쥐도 없었던 것이다.
그 또한 찬스다. 서양인이 만들어낸 진부하고 판에 박힌 생각을 한국은 물려받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이창동 감독같이 서양 비평가와 관객을 사로잡은 한국 감독들은 한국의 이국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거나 일부러 거기서 멀어지려 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영화는 이국적이지 않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일본, 인도, 중국영화가 우리에게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21세기 초반, 지난 수세기의 그림이나 문학 혹은 영화로부터 온 온갖 선입견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숫처녀 상태로 한국영화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얼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에 맞부딪히게 해주었다. 그들의 영화는 마치 자전거를 탄 아가씨처럼 관객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거다. 관객이 전혀 기다리지 않았던 곳으로 지나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