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 돌아, 라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설사 MB정부 하는 짓에 야마가 돌아도, 다른 표현을 찾는 게 옳다. 비속어다. “MB정부에 야마가 있는가”라고 묻는 건 한결 낫다. 두 야마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처음 잡지를 만들 땐 그 용어가 생소했다. 선배들은 툭하면 말했다. “기사에 야마가 없잖아.” “그 기획은 야마가 분명하지 않아.” 알아보니, 야마는 산(山)을 뜻하는 일본어 ‘야마’(やま)에서 유래했다. 야마엔 산 말고도 꼭지·절정·핵심이라는 의미도 있다. 야마가 돈다는 건 꼭지가 돈다는, 야마가 있냐는 건 알맹이가 있냐는 뜻이었다. 신문사 기자들의 입에 달라붙은 야마는 생활에서도 응용된다. 얼마 전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는 한 여자후배는 상대 남자에 관해 이렇게 혹평했다. “허우대도 멀쩡하고 반듯하게 생겼는데, 대화를 해보니 야마가 없어요.” 캐릭터의 주제가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개성이나 특징이 요약되지 않아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야마를 떠올린 건 엣지(edge) 때문이다. 패션지 에디터들의 생활을 그린 SBS 주말드라마 <스타일>에서 편집장 박기자(김혜수)는 시도 때도 없이 ‘엣지’를 들먹인다. “이 집 요리 엣지있어.” “악플도 엣지있게 달아라.” “엣지없이 왜 남의 일을 방해하는 거야?” 3년 전 신문에서 주말판 창간을 준비할 때 한 여성지 마케터 출신에게서 엣지란 말을 처음 들었다. 패션업계에서는 엣지라는 용어가 가장 트렌디하게 떠오른다며 ‘엣지(edgy)한 매거진’으로 포지셔닝해야 독자와 광고주들에게 소구할 수 있다는 충고였다. 엣지란 날카로움을 말한다. 각이 서거나 눈에 띄는 뭔가가 있느냐는 것이다. 진정한 날카로움은 알맹이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엣지는 야마와 피붙이다. 패션지 기자들이 드라마에서처럼 그 말을 남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또 그런 말투에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엣지란 좋은 뜻임에는 틀림없다.
노무현과 김대중은 한국사회에서 야마가 가장 분명하고 엣지가 강력한 정치인이었다. 올해 두명을 다 떠나보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든다섯의 노구임에도 마지막까지 엣지있는 모습을 남겼다. 심란한 정치현실에 꼭 필요한 따끔한 충고를 날려주며 끝까지 ‘스타일’을 지켰다. 추모의 마음이 의례적 애도의 수준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스무살의 첫 투표(1987년)를 포함하여 세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찍었다.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송이 국화에 담아 영전에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