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화여대 아시아 여성학 센터와 일본 오차노미즈 대학이 주관했던 한·일 여성 학자들간의 교류 행사 중의 일이다. 흥미로운 학술회의도 하고 오사카의 자이니치 조선인 학교도 방문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극단 다카라즈카 공연도 보았다. 여성 가극, 여자 천국을 구경하는 재미가 적지 않았다.
학술회의 함께 했던 어느 여성학자의 참배
한·일 관계에 대한 마음의 동요는 이 일정 중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을 때 일어났다. 마지못해 입구로 발을 옮기는데, 우리와 동행인 한 일본 여성 학자가 참배를 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문학 전공이지만 한류 드라마를 좋아하고 연구도 하는 이른바 지한, 친한파 여성이다. 그녀가 향을 피우고 고개를 조아리는 짧은 순간 동안 미묘하나 강렬한 감흥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혹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습관이며 제의를 반복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녀가 이 동행에서만은 그 반복을 거두어주기를 바랐다.
야스쿠니 신사 내 전쟁박물관 유슈칸은 오래 머물기가 어려웠다. 불편했다. 종군위안부들의 머리 가닥으로 만든 병사들을 위한 기념물, 또 죽은 병사들의 수많은 사진이 가득한 전시실, 중국을 나무라며 조선에 대해 아시아의 맹주, 큰형인 척하는 문구 등.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라고 자기 재현하는 역사적 망각의 자세. 식민통치, 침략전쟁을 일으키고도 수도 한복판에 백주에 이런 기념관을 세운 나라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방문 이전에 나는 레오 칭이라는 대만계 미국 학자의 글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간 대만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일본군 병사로 죽을 때에만 ‘일본인이 되는’ 그 역설 속에서 죽어간 대만 원주민 병사들의 유해가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된 것을 다시 돌려받으려는 유족들의 눈물어린 싸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리쓰메이칸 대학의 교수인 서승은 “우리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무엇인가?”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역사적 배경과 대만·한국·오키나와, 일본 사람들의 야스쿠니 반대 공동 대응 운동을 적고 있다.
백인 미국인을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소동
8월에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개봉되었다. 남자주인공 중 한명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의 전 총리다. 다른 주인공은 가리야 나오하루, 야스쿠니도의 명인이다. 감독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 감독 리잉이다. 제목은 <야스쿠니>. 카메라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온 사람들을 보여주고 제의를 보여준다. 광각으로 찍어 이들은 좀 괴이해 보이지만 내레이터가 특별히 언급을 하거나 하는 장치들은 동원되지 않는다. <야스쿠니>는 ‘자기 발견적’ 방식으로 텍스트를 끌고 나간다.
야스쿠니 신사에 완전 몰입한 일본인들을 다루면서 한 백인 미국인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 국기를 들고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인다. 일본인들이 다가와 그에게 관심을 표한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는 부동산 중개인이라고 대답한다. “어디에서 왔나?”라는 질문에 “네바다”라고 답한 뒤 ‘캘리포니아주 옆에 있는 곳’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부시도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지지해야 한다며 미국의 리더십이 잘못되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왜 미국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지 여기에 와서 피켓을 들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야스쿠니 신사쪽에 미디어가 더 많이 모인다고 말한다. 이 일본인들과 미국인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그러나 곧 다른 사람들의 아우성에 의해 깨진다. 히로시마가 상기되자 흥분한 군중은 “양키 고 홈!”이라고 소리친다. 미국인은 경찰의 제지로 신사를 떠난다.
공식적인 신사 참배가 이루어지는 날, “북한과는 전쟁도 불사하며 신사 참배는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위”라는 발언 등으로 극우 보수주의자로 악명 높은 도쿄 시장 이시하라 신타로가 참석해 연설한다. 카메라는 그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바로 그 무렵 고함이 터진다. 아시아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는 것. 세명의 청년이 번갈아가며 고함을 외치고 사람들이 이들을 끌어내 구타하며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여기서 흔들리는 카메라는 끈질기게 이 광기의 군중과 청년들의 투쟁을 급하게 따라간다. 군중 가운데 한 남자가 “중국인은 일본을 떠나라!”고 거듭거듭 소리친다. 청년은 쫓겨가면서도 구호를 외치고 예의 그 외국인 혐오증 구호는 더러운 저주처럼 스크린에 맴돈다. 중국인, 중국인… 떠나라 떠나라 떠나라. 사람들의 구타로 입 근처가 찢어져 피를 흘리던 청년은 경찰차가 와 자신을 태우려 하자 몸싸움을 계속하면서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밝힌다. 야스쿠니 신사 주변의 군중이 폭도에 가까운 광기를 보이는 와중에 꺾이지 않는 그의 주장은 감동적이다.
이 다큐는 이런 극적 사건들 외에도 신사 참배를 하러 오는 여자들이 나지막이 고이즈미를 지지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착한다. 또 고이즈미가 자신이 신사 참배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매년 여기에 와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되겠지’ 하고 결심하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는 거짓말도 조용히 다룬다. 이 영화는 이렇게 내부 침투자로서의 시선과 일본 침략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아시아인 그리고 불투명한 미국의 시각을 은근히 미묘하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담아낸다.
얼굴 2/3 클로즈업으로 정동효과 내다
<야스쿠니>가 다큐로서 드러내는 여러 가지 사실과 진실이 있지만 그중에서 일본 내부 비판자의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는 군복을 입은 아버지의 영정을 절의 벽에 걸어둔 한 스님의 이야기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스님이었으나 일본이 패전 기미를 보이던 1943년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 젊은 스님 병정은 종교인으로서 살생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었다. 그의 아들 스님은 국가가 종교인까지 징병하는 군국주의에 기반한 통치를 비판한다.
다른 쪽에서의 비판은 대만의 원주민 유족, 그리고 역시 유가족인 일본인 여성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침략자의 전쟁으로부터 유족의 이름을 거두어가고 싶다고 호소한다. 특히 대만에서 온 여성은 “당신은 가족이 대만에서 죽었다면 그 유해를 일본으로 가져오고 싶지 않겠느냐”며 질타한다. 대만 사람들이 친일이라고 알려진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면서 많은 원주민들을 죽이고 그 아이들을 군사학교에서 훈련해 전쟁터에 보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전하는 여성은 아름답고 당차고 정확히 주장을 펼친다. 잔혹한 역사로부터 현재를 배운 사람답게 말이다.
그녀가 말하는 현장에는 한국에서 온 유족들도 있어 한국어가 들리고 일본어·중국어 통역이 이루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그야말로 해결되지 않은 ‘아시아’의 문제임을 각인시킨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대만 사람들은 2만8천명, 한국 사람들은 2만2천명 정도가 유족의 동의없이 합사되어 있다. 이들은 서승의 표현대로 “죽어서도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신사에서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 행군하는 ‘귀신 부대’에 편입된 것이다”. 유족들의 반환 요구에 신사쪽은 “지금은 한국 사람일지 모르지만 죽을 때는 일본인이었다”라고 대답한다.
예의 광각으로 신사 참배자를 잡는 방식 외에도 영화는 얼굴의 3분의 2 정도를 클로즈업으로 잡아 일종의 정동효과(the affect effect)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부여한다. 10년 정도 촬영했다고 하는데 야스쿠니 신사에 비가 내리는 장면이 때를 달리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정동효과를 배가한다.
이 귀신 부대를 지키고 숭배하는 참배객과 더불어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인물은 야스쿠니라는 이름을 붙여 일본도를 만들어온 가리야 나오하루다. 그는 장인 중의 장인으로 등장한다. 90살의 가리야는 장인의 정성으로 야스쿠니도를 만드나 그 칼은 난징대학살 당시 두 일본인 장교의 포로 100명 베기 경쟁 시합에 동원된 바로 그 야스쿠니도다. 가리야는 자신의 신체가 국체이자 야스쿠니도인 일본 군국주의의 도구이자 매체며 생존자다. 그가 조용히 칼을 벼리고 완성하는 과정은 곧 뒤따라오는 전쟁 시기의 포로 목 베기 장면들과 가차없는 몽타주를 이룬다.
한국, 대만인 병사들의 죽은 영혼이 포함된 귀신 부대를 야스쿠니에 안치하고 그것을 볼모로 아시아의 맹주, 제국으로 부상했던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속하는 일본을 분석하면서 <야스쿠니>는 그 내부 비판자들의 용기있는 정신과 행동을 함께 보여준다. 고레츠키의 진혼하는 음악이 흐르는 후반부에는 아시아 태평양전쟁시의 스틸 사진이 사용되며 야스쿠니 신사를 부감으로 보여주던 카메라가 도쿄 시내 전체를 조감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떠나지 못하고 잡혀 있는 귀신들과 달리 카메라는 야스쿠니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