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서커스 유행 ★★★★★ 스피드 ★★★★
아트서커스 붐이다. 몇해 전부터 ‘태양의 서커스’니 ‘서크 엘루아즈’의 그야말로 혁명적인 서커스들이 혼을 빼놓더니, 올여름엔 서크 엘루아즈의 새로운 공연 <아이디>가 인천에 당도해 거대한 천막을 펼쳤다. <퀴담> <알레그리아> <레인> <네비아> 등 지난 아트서커스들이 일상 따윈 까맣게 잊도록 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마력을 발휘했다면, 전세계 최초로 공개된 <아이디>는 콘크리트 벽에 사납게 휘갈긴 그래피티에 근접한 서커스다. 중절모를 썼으되 머리는 없는 트렌치코트 신사나 머리 전체를 베일로 휘감은 수상쩍은 여인들은 사라지고, 가죽 재킷을 걸친 자유로운 청춘들이 무리지어 음산한 회색 도시를 장악한다. 기교는 덜하지만 파워만큼은 대단하다.
‘스피드, 스펙터클, 스페셜.’ <아이디>의 주제는 S로 시작하는 세 단어다. 무심한 도시인들이 바쁘게 제 갈 길을 향해 가는 와중에 붉은 머리 소녀가 한 청년과 마주한다. 운명적인 만남을 표현하는 듀엣의 기이한 애크러배트. 심장을 쥐어짜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일군의 비보이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하고 나면 근육질 남성들이 봉을 타고 오르거나 자전거로 장애물을 넘는 등 숨 죽인 독무가 펼쳐진다. 아트서커스 팬이라면 기시감을 느낄 밸런스, 후프 등의 프로그램에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치는 현대의 특성을 부여한 것이 이번 신작의 가장 큰 특징. 하이라이트는 트램펄린을 이용한 마지막 점프로, 티셔츠까지 벗어던진 청년들이 중력을 무시한 듯 벽을 타고 걷거나 뛰는 것도 모자라 탄성을 타고 위험하게 대결하는 풍경은 단연 압권이다. 공중곡예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길고 우아한 여성 아티스트가 폭 넓은 천에 휩싸이거나 매달려 구가하는 후반부의 묘기에 급격하게 심박동이 뛰겠지만.
태양의 서커스가 서커스의 변신을 꾀한 업계의 선두주자라면, 서크 엘루아즈는 태양의 서커스의 일원이었던 제노 팽쇼가 1993년 창립한 또 다른 캐나다 서커스단이다. 지상의 것이라기엔 너무 완벽했던 <퀴담>과 <알레그리아>의 기술에는 못 미치지만,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인 아티스트들이 70여분간 선사하는 도시의 박력은 그것대로 신선하고 기발하다. 특히, 계단과 창문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던 놀라운 무대장치와 조명의 향연이란! 송도 인천세계도시축전장까지의 지루한 여행을 보상하는 값진 눈요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