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만화가 강경옥의 만화 단행본 말미에 실렸던 유명한 후기가 있다. 만화를 그렸던 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창 시절 학원물을 그려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고, 등장인물은 늘고, 이야기는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하며 수습 불가능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결국 동생이 선택한 해결책은… 등장인물을 하나씩 죽이는 것이었는데,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자… 학교에 불을 질렀다, 는 이야기였다(고 기억한다). 친구의 환호를 먹고사는 아마추어 학생 작가뿐 아니라 시리즈물을, 특히 스릴러 시리즈를 쓰는 소설가 역시 같은 딜레마에 처한다. 모두 다 행복하게 그리면 재미가 없다. 진짜 스릴은 새로 등장한 ‘시민1’이 죽으면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많이 죽이고, 잔인하게 죽이고, 주인공과 가까운 인물을 죽이는 건 그래서다. 주인공이 슬퍼한다, 시름에 잠긴다. 복수를 맹세한다, 독자도 눈물을 훔치며 주먹을 마주 쥔다! (두둥)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미유키가 납치되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은 적이 많은 걸 상기해보라. 주연보다 조연에 몰입하며 책읽어버릇하는 독자라면 냉혹한 킬러 같은 작가의 손끝에서 사랑하던 캐릭터가 비명횡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제임스 패터슨의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 3권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 참고로, 이 시리즈의 1, 2권은 <첫 번째 희생자>와 <두 번째 기회>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의 ‘밀리언 셀러 클럽’에서 소개되었다. 범죄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네 여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 강력반 부서장 린지, 신문 기자 신디, 검시관 클레어, 검사 질이 그들이다. 중심 인물이 넷이나 되다 보니 가끔 산만하다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보통 희생자 전문인 여성을 해결사 역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 특유의 맛도 느낀다. 연쇄살인이나 테러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 본연의 이야기에 연애, 결혼, 사별, 임신, 유산, 가정폭력과 같은 개인사가 더해진다.
<쓰리 데이즈>에서는 ‘오거스트 스파이스’라는 서명을 남기는 테러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우먼스 머더 클럽’ 중 한 사람이 그의 피해자가 된다. 제임스 패터슨은 뭘 먹었는지 남자 작가치고는 로맨틱한 장면을 쓰는 데서도 굉장한 장기를 보인다(린지와 엮이는 몰리나리가 너무 매력적이라 혹시 패터슨이 몰리나리도 죽이려는 걸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에서는 린지가 오명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에 빠진다. 시리즈 1권부터 4권까지 재미가 상승곡선을 그린다는 건 장점. <쓰리 데이즈>에서 누가 죽는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에서는 일본계 미국인 변호사인 유키가 ‘우먼스 머더 클럽’의 뉴비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