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혼자 저녁을 먹으러 어딜 가기 애매해서(응?) 펍에 들어가 기네스를 파인트로 한잔 시켜 마셔 버릇했다. 파인트면 568ml인데, 기네스 맥주 자체가 워낙 묵직해서 그런가,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가, 그 한잔이면 숙변처럼 들러붙은 비관과 쑤시는 팔다리의 고통은 자취를 감추게 마련이었다. <유럽 맥주 견문록>을 보다가 안개처럼 서늘하고 솜처럼 푹신한 기네스 맥주의 거품과 포만감 느껴지는 묵직한 맛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책의 사진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니 유럽에서 마셨던 각종 생맥주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천국이자 지옥이다. 이 책은 영국, 아일랜드,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맥주로 유명한 유럽의 나라와 도시를 직접 방문해 쓴 맥주탐사록이기 때문이다.
맥주라고는 해도 미묘하게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고 맛도 천지 차이라(수준 차가 아닌 개성 차) 혼란스러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정리할 만한 책이다. 이를테면 영국 펍에서 파는 ‘리얼 에일’은 뭔가? 한국 ‘생맥’(참고로 생맥주라고 불리는 스테인리스 통에 담겨 유통되는 맥주는 케그 비어라고 한단다)의 “쌔~!”한 맛에 길든 입에는 어딘가 덜떨어진 듯했던 에일의 정체는? ‘리얼 에일’이라고 불리는 캐스크 비어는 영국에서 팔리는 맥주 중 가장 고전적인 맥주로 펍의 셀라에 보관된 캐스크 안에서 2차 발효의 숙성을 거치고, 그런 이유로 10~13도에 보관되기 때문에 미지근하다고 느껴지는 온도가 사실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정도다.
2차 숙성을 펍에서 시키니 맛도 펍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동네마다, 펍마다 다른 맥주 맛 때문에 모험심 강한 술꾼들에게 마냥 즐거운 땅이 영국이고 아일랜드다. 맥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독일과 마치 와인처럼 향과 색이 우아한 벨기에 맥주 얘기도 비중있게 실렸음은 물론이다. 벨기에에 갔다가 생맥주를 뭐라고 하는지 몰라 헤맸던 경험이 있다면 “벨기에에서 생맥주의 경우 맥주 이름 뒤에 ‘Au Fur’가 붙고 병맥주의 경우는 ‘En Bouteille’가 붙는다”는 대목에서 암기 단어장이라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지도(영어로 모피랑 똑같이 쓰는 게 생맥주일 건 또 뭐냐고).
맥주마다 맥주잔 모양이 다른 이유, 맥주 이름에 숨은 제조방식, 유명한 맥줏집 등의 정보는 기본이다. 호가든인지 회가든인지 후가든인지, 맥주 이름 읽기 헷갈려했던 사람이라면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읽는 내내 타는 듯 목이 마른 것은 단순히 날이 덥기 때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