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어달, 나는 계속 설득에 실패하고 있다. 칼럼의 제안자가 원고까지 쓰는 변태적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는 바람에, 당최 남자 손 마지막으로 잡아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 판국에 ‘작업의 순간’같은 제목의 칼럼을 맡게 되어 고통스럽다, 그러니 나를 바꾸건 코너를 바꾸건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라는 요지로 편집장을 설득하고 있는데, 하여튼 계속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EBS 다큐프라임 <설득의 비밀>을 보고, <설득: 심리학에서 답을 구하다>도 읽었다. 설득에는 엄연히 왕도가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물론, 연쇄살인범도 잘생기고 말주변만 있으면 별 어려움 없이 범행을 계속할 수 있는 법이고, 어린이들은 잘생기고 예쁘기만 하면 ‘아는 사람’으로 인식해 유괴범인지도 모르고 끌려가기 십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이래서 소쩍새는 그리 슬프게 울고 엄마는 살을 빼라고 하셨나보다), 그런 외적이고 천부적인 조건 말고도 설득의 달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말이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잡지의 표제어나 다양한 광고용 전단지 등을 보면 의문문을 많이 사용한다. ‘전기 요금,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문구는 일반적인 평서문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이성에게 고백할 때도 “난 네가 좋아”라고 직접 표현하는 것보다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고 의문문으로 말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심리학 데이터를 참고로 하면 그렇게 추론할 수 있다. -<설득>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지식여행 펴냄
물론 저런 방법이 누구에게나 먹힐 리는 없다. 말로 하지 않은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으면 옛날옛적에 종로3가에 돗자리 폈지. 나만 해도 원래 에둘러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이 너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같은 말을 백번 들어봤자 “그래? 내 마음은 너에게 전해졌니? <씨네21> 정기구독 한부만 할래?”라고 교활한 눈빛을, 선홍빛 잇몸을 빛내며 질문으로 답해왔다. 하지만 저런 방법이 먹히는 경우도 있다. 몇년 전 지인들 사이에 화제를 낳은 어떤 연애가 그랬다.
오랫동안 회사 동료로 지내던 남녀가 있었다. 그냥 동료로 오랫동안 좋은 사이였는데, 어느 날 일이 끝나고 남자 차를 타고 집까지 오게 된 여자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한마디 던졌다. “너랑 나랑 어떤 사이니? 한번 생각해봐.” 그녀는 다짜고짜 그 말을 하고 내렸는데 남자는 정말 그녀와 자기가 어떤 사이일까 고민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위반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자, 그러니까 이제 의심을 거두고 한번 시도해보자. 불신지옥에서 묻는 자만이 구원받으리니. 편집장님, 칼럼을 그만 쓰고 싶은 제 마음이 편집장님께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독자 여러분, ‘제 이름으로’ <씨네21> 한부만 정기구독 해주세요. 이런 제 마음이 독자님께 전해지지 않았을까요? 꼭 제 이름으로 해주셔야 해요. 네?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