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신임위원장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 초 불명예롭게 사퇴한 강한섭 전 위원장의 후임 선발을 위해 8월7일까지 공모 접수를 받은 결과, 위원장 1차 후보는 모두 9명이었다. 변장호 감독, 이영실 감독, 정용탁 한양대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조희문 인하대 교수, 최완 아이엠픽쳐스 대표, 최진화 강제규필름 대표, 황기성 서울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그리고 영화계와 관계없는 홍춘표 선진화국민연합 이사가 그들. 곧바로 영화진흥위원회는 8월12일 임원추천위원회를 열어 5명의 최종 후보를 선발했다. 애초 3배수인 3명을 뽑을 예정이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의 건의로 5명을 뽑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부와 영진위가 최종 후보를 공개하지 않는 탓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교수, 산업계 인사, 원로 영화인이 고루 선정됐다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들 5명 중 1명은 문화부 장관의 임명과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영진위원장으로 선임된다. 한편 강한섭 위원장과 함께 동반 사퇴한 6명의 영진위원에 대한 선발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모두 32명이 지원한 가운데 임원추천위원회는 3배수인 18명을 선정해 문화부에 넘긴 상태. 위원장과 위원이 최종 선임돼 ‘4-1기’ 영진위가 출범하는 시점은 9월 초로 예상되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개최 일정에 따라 늦춰질 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은 영진위가 사실상 새로 구성되는 상황임에도 영화계의 기대감이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영화계 인사는 “영진위원장 후보의 면면이 참신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영화인도 “정말로 영화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분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현업에서 너무 오래 떨어진 원로 인사나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교수들, 산업계의 후방에 물러난 영화인 등이 후보이다 보니 “강한섭 위원장 체제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영화의 재발명’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4기 영진위는 1년 남짓한 기간 내내 삐걱거렸다. 강 전 위원장에 대한 핵심적인 비판은 노선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와중에 세계적 경제 위기까지 겹치는 지독한 불운도 있었지만, 자신만의 뚜렷한 정책적 지향점이 없었다는 점은 확실한 문제였다. 그는 시장주의자임을 표방했지만 때로는 영진위가 한국영화의 재원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양 정책을 운영하는 등 시장과 공공성 사이의 긴장성을 어떻게 유지할 지 해법을 만들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그밖에 영진위라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부 구성원과 갈등을 빚었고 검증 안된 외부인사를 정책의 핵심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또 좌파 성향 영화인과 단체에 대해 명백한 선을 긋는다면서 이념갈등을 조장했다.
따라서 신임위원장의 일차적 과제는 영진위 구성원 사이의 갈등과 흐트러진 정책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소유자가 신임위원장으로 선임돼야 한다. 만약에 문화부가 영진위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신임위원장 후보가 한국영화의 ‘진흥’을 진심으로 바라는 이라면 그런 문제쯤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진짜 문제라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