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과의 라운드 테이블은 컨벤션센터 근처의 Se호텔에서 코믹콘의 <아바타>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저녁에 이루어졌다. <타이타닉> 이후 그는 심해탐사 및 우주에서의 촬영 프로젝트에 빠졌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완고한 나사(NASA) 관리자들의 협조를 얻어냈는지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들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이클 만이 탐정 기질의 감독이라면 제임스 카메론은 열정적인 탐험가 기질을 가졌다.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여전히 수성하는 <타이타닉>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그런 면도 없잖아 있다. 과연 전작을 넘어서는 작품을 들고 나올까라는 외부의 시선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타이타닉>의 감독이기 때문에 코믹북이나 그래픽 노블 등을 원작으로 하지 않고도, 또 성공한 영화의 속편이나 리메이크가 아니고도 이런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아바타> 제작에 들어갔는데, 당시 <아바타>를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한동안 수중 다큐멘터리 촬영에 빠졌을 때였는데 이제 장편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여러 작품들을 놓고 진행하던 때이기도 하다. 특히 <Battle Angel Alita>(일본 만화 <총몽> 원작 영화)와 <아바타>는 디자인이나 각본이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어느 날 테스트 촬영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그럼 <아바타>로 테스트만 해볼까 하고 간단한 시나리오를 밤새 후딱 써서 다음날 촬영했다. 판도라를 배경으로 한 테스트 결과물이 나온 이후 그대로 자연스럽게 <아바타>가 진행돼버렸다.
-오랜 기간 이 작품에만 매달렸는데 집착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글쎄. 내가 집착하는 대상은 다이빙인데. (웃음) 영화 제작은 집착이 아니라 열정이다. 나는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들에게 최고를 끌어내고, 무언가 엄청난 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데 무한한 열정을 느낀다. 한명의 개인이 특별히 돋보이는 영화가 아니라 최고의 그룹이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더 신난다.
-어떻게 최고의 것을 끌어내나. =배우에게는 그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캐릭터에 접근할 만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다. 그래서 리허설을 많이 한다. 그런데 ‘퍼포먼스 캡처’ 때문에 더이상 ‘커버리지’(한 장면을 각기 다른 숏으로 잡아내는 것)를 찍어야 할 필요가 없어져서 이제는 좀더 여유가 생겼다. 이를테면, 배우가 나타나면 ‘이 장면에 대해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당신은 어떻게 준비했는가’라고 묻고는 다 한번씩 해보는 거다. ‘퍼포먼스 캡처’는 연기자에게 좀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디자이너들에게는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작업이 최종 영화에 반영되도록, 그래서 영화에 모두들 공헌한다는 기분이 들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
-촬영장을 휘어잡는 감독이라는데. =촬영장에서 나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모든 것에 직접 하나하나 관여한다고 해야 하나. 보통 카메라를 내가 잡기도 하고. 특히 배우들이랑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테이크도 많이 간다. 뭐, 일단 배우가 동의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스탠리 큐브릭이 끝없이 테이크를 갔던 이유가 그를 통해 배우가 겪는 심리적인 변화를 담기 위해서라는데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샘 워딩턴은 그런 면에서 손발이 맞았다. 샘은 해보고 싶은 방향이 있으면 의견을 제시하고, 그게 아니면 ‘이미 건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줄 안다. 그러면 대개는 바로 이전 테이크가 그가 내놓을 만한 최고이다. 자신의 연기가 좋은지 아닌지,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연기가 무엇인지 아는 배우와 작업하는 것은 감독 입장에서 편하고 좋다. 더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시고니 위버는 예외지만. 그녀는 매번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아주 조금 더 견고한 연기를 무한하게 내놓기 때문에 내가 그냥 어느 순간에 끊어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테이크를 생산해낼 테니까. 그녀는 지치지 않는 섬세한 기술자다.
-왜 나비족은 파란색인가. =그냥 개인적으로 파란색을 가장 좋아한다. 그게 다다. (대답을 좀더 기다리자) 초록색이었다면 왠지 너무 뻔한 느낌일 것 같았고 핑크색, 갈색, 노란색 등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색이었으니까. 적용해볼 만한 색 조합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보라색은 내게 뭐랄까 약간 영적인 느낌이었고. 파란색 피부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바로 전달해주지 않나. <아바타>에서 나비족의 파란 피부 밑에는 붉은 피가 흐른다. 뽀족한 귀나 손톱 밑으로 빛이 통과되는 살아 있는 파란색이고 개인마다 약간씩 다른 음영을 띤다. 파란색 사람들이다.
-스머프같은 건가. =하하. <아바타> 시리즈가 계속되면 아마 4편이나 5편 정도에는 나비족이 스머프를 만날지도. (웃음)
-오래전부터 3D영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고 언급해왔는데 그렇게 확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카메라를 직접 만져온 사람으로서 이전 방식에 매력을 더이상 느끼지 않는다는 점 하나. 나머지 하나는 디지털 시네마가 앞으로 좀더 저비용으로, 좀더 빨리 3D영화를 만들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어디서나 손쉽게 3D 기술을 접하는데 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10여년 전에 <아바타> 제작을 발표했을 때에는 엄청난 3D영화를 만들어서 보수적인 극장들이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고서라도 상영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라는 야심으로 시작했는데, <아바타>를 만드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이미 다른 3D 작품들이 나와버렸다.
-<아바타>의 외부 노출은 이번 코믹콘이 처음이다. 1년 전부터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되는 다른 블록 버스터들과는 달리 극비리에 진행되었는데 다소 늦게나마 코믹콘에서 공개하기로 한 이유는. =적당한 시기이고, 코믹콘에서의 공개가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터넷과 모바일 덕에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무섭게 퍼지고 사람들의 생각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 동시에 그만큼 빨리 잊어버리기도 하고. 영화가 개봉될 즈음까지 새 영화에 대한 기대와 신선함이 지속되었으면 했기 때문에 조심했을 뿐이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정말 ‘판도라1A(기초반) 수업’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