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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아저씨의 맛] 그 주책에 반하다

휴 그랜트

지난 회에 언급한 <결혼 못하는 남자>의 흥행 실패를 안타까워하며 관련기사를 뒤적이다가 무릎을 쳤다. ‘어바웃 어 보이’라는 기사 제목 때문이었다. 지진희도 충분히 사랑스럽지만 역시 브리태니커백과사전적 의미에서 ‘결못남’에 어울리는 인물은 바로바로바로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주인공 휴 그랜트 아니겠는가.

현존하는 지구상의 결못남(조재희처럼 40살 기준으로 친다) 가운데 가장 탐스러운 양대 인물은 누가 뭐래도 조지 클루니와 휴 그랜트일 것이다. 물론 요새 다소 처지는 작품 활동으로 휴 그랜트의 매력이 주춤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최근의 커리어 역시 그가 평소 견지해온 게으르고 야심없는 세계관에 충실한 것인 바, 잘생기고, 돈 많고, 지적인 배경까지 갖추고 있지만 ‘결못남’이 될 수밖에 없는 그의 진심, 또는 일관된 라이프 플랜의 진행형이 아닐까 싶다.

조재희가 ‘결못남’의 한 유형을 보여준다면 휴 그랜트(가 연기해왔고 또 그 안에 진짜 휴 그랜트가 녹아들었을 법한 캐릭터들)는 ‘결못남’의 원형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조재희가 “내가 왜 책임져?” 뻔뻔하게 말한다면 휴 그랜트는 “아, 그게 말이지” “글쎄 그건 좀…” “실은 좀 곤란한 문제가…”라고 웅얼웅얼댄다. 내가 뭘!이라고 소리 지르는 남자들은 상당수 여자들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웅얼웅얼 피하는 남자는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무한 인내심으로 그 남자의 결단을 기다리던 여성들도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어 떠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남자 ‘결못남’일 뿐 조재희처럼 ‘연못남(연애도 못하는 남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연애신공 게이지는 높아만 지는데 아저씨의 쿨함이 있기 때문이다. 휴 그랜트가 가장 섹시할 때는 인터뷰에서 40살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도 늦고 해서 동갑내기들과 우울하게 술집에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거나, 영국 총리가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가 술에 취해 눈치없는 농담으로 총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집무실에 들어간다고 떼를 쓰다가 쫓겨났다거나 하는 에피소드를 어제 먹은 점심 이야기하듯 할 때다. 아마도 지적 배경이 받쳐주기 때문에 이런 주책들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더 쿨하게 보이는 매력은 여자들은 무장해제시킨다. 특히나 남자들의 뻔한 제스처에 신물난 나름 똑똑한 여자들.

그의 이런 헐렁한 매력에 몸과 마음을 던졌던 여자들은 하지만 결국 그의 우물쭈물, 웅얼웅얼에 나가떨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여자들이 몰려오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가 나쁘냐고? 천만에. 때로는 한 여자를 평생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 수많은 여자들을 몇 개월에서 몇년간 행복하게 하는 게 그 기간을 붙여놓고 보면 인류 복지에 더 큰 기여다. 결못남 휴 그랜트, 알고보면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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