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아파트로 간다. 최종마감이 끝나는 날 새벽이면 승용차를 운전해 퇴근한다. 자유로를 달려, 40분 만에 도착하는 아파트 주위는 그저 음산하다. 주차할 곳을 찾는다. 일단 지하주차장은 피한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다. 그 음침하고 드넓은 공간에서 쿵쿵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의 여운이 싫다. 어떻게든 지상에 대려고 돌고돌지만 쉽지 않다. 결국 지하로 내려간다. 역시 빼곡하다. 단 하나의 자리도 없다. 숨이 막혀온다.
새벽에 ‘맨 정신으로’ 아파트에 들어갈 땐 약간의 긴장이 요구된다. 14년 전 복도식 아파트에 처음 살 땐 더욱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은 8층의 맨 구석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다섯집의 창문을 지나가야 했다. 중간에 통로 하나도 거쳐야 하는데, 가끔 정체 불명의 남자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좁은 복도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겁이 났다. 알고보니 우유 배달부였다. 그곳에 10년 살면서 세명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한명은 여중생이었고, 또 한명은 할아버지였으며, 마지막 한명은 30대 주부였다. 모두 투신자살이었다. 특히 주부는 우리집과 같은 열의 꼭대기층에 살았다. 그녀가 죽자마자 남편은 집을 내놨다.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전후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헐값에 청산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파트는 언제나 평화로워 보였다.
아파트의 소리없는 공포를 떠올리게 된 건 <불신지옥>을 보고 나서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복도식 아파트를 보고 나면 괜히 아파트가 무서워진다. 옆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믿지 못할 것만 같다.
전혀 다른 이유로 아파트에 소름이 끼친 적이 있다. 두달 전이었다. 그날도 새벽 세시쯤이었다. 마감을 끝내고 아파트 근처 지상에 간신히 차를 댔다. 차 문을 닫는 순간 어둠 속에서 50대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얼굴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인사는커녕 서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말없이 내 곁을 슥 지나갔다. 방향이 같았다. 그를 뒤따라가다가 갑자기 “혹시 라이트를 안 껐나”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가끔 그런다). 차로 되돌아갔다. 라이트는 꺼져 있었다. 뒤늦게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그 남자가 있었다. 괜히 또 불쾌해졌다.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었다. 문이 열리고, 억지로 탔다. 그가 먼저 단추를 눌렀다. 그 단추번호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같은 층이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우리집과 유일하게 마주보고 사는 집의 가장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현관 앞에서 서로 등을 대고 디지털 키번호를 누를 땐 뒤통수가 따가웠다. 3년을 살고도 앞집 아저씨 얼굴도 모르는 빌어먹을 나, 그리고 빌어먹을 아파트. 이것은 종교와 관계없는 또 다른 ‘불신지옥’의 풍경이었다. 당신은 천국에 살고 계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