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뉴스를 보다가 꺼버렸다. 평택 쌍용차 공장의 옥상에서 노조원들이 경찰에 쫓기고 맞는 장면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험한 세상 잘 헤쳐가려면 이런 것도 알아야 하겠지만, 이제 막 나쁜 놈, 착한 분, 도덕적 발달 단계에 진입한 아이에게 나쁜 놈이 아닌데도 저렇게 살인적인 테러를(그것도 경찰 아저씨에게!)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심리검사를 한 일이 있다.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것을 연상하라는 주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시위 도중 쫓기고 있다”고 말했다. 길지 않은 한 시절 최루탄과 지랄탄이 쏟아지던 거리에 있었던 게 내 의식 깊이 각인돼 있나 보다. 벅찬 마음과 분노로 나서기는 했으나 내 마음 밑바닥에 그 시절의 기억은 다치거나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그 사진을 다시 볼 일이 있었는데 유럽의 10대 소년들이 깔깔 웃으며 즐겁게 뛰어다니는 장면으로 충분히 볼 만했다.
쌍용차 사태는 폭염 속에서 음식물은 물론 물도 전기도 끊긴 채 농성 공장 출입문을 스스로 용접해버린 노조원들이 떼죽음을 당하기 직전에야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해고 비율을 조금 낮추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사실상 노조의 항복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한 노조의 결단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노사의 의견 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그 많은 살인 무기들이 동원됐어야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종족끼리는 제아무리 영역 다툼을 한들 상대를 죽이거나 죽을 만큼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애초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의 처지를 회사가 조금만 헤아렸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주장과 그에 따른 갈등에 정부가 일말의 책임감을 지녔더라면 우리는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80년 광주가 그랬듯이 끔찍한 집단 기억과 상처는 쉬 사라지지도 아물지도 않는다. 이제 막 선과 악을 구별하고 양보와 책임을 배우는 내 아이가 처음 접하는 세상의 뉴스들이 이런 살풍경인 게 미안하고 두렵다. 어쩌면 이런 심정조차 사치이겠다. 쌍용차 노조원과 그 가족들, 또 그들을 진압한 특공대원들과 구사대의 기억은 과연 어떻게 치유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