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를 만났다. 서울액션스쿨의 권귀덕과 박갑진은 <차우>에서 차우를 연기한 스턴트맨이다. CG로 만든 차우가 ‘크기’를 드러내고 애니메트릭스로 조종한 차우가 섬세한 표정을 보여준다면 이들이 모형차우를 뒤집어쓰고 연기한 차우는 괴력의 액션을 담당했다. 영화에서 차우가 난동을 부리는 장면의 대부분을 이들이 연기했다고 보면 된다. 권귀덕은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를 통해서 눈에 익은 얼굴이고, “아직 액션 대역을 주로 한다”는 박갑진은 <신기전>과 드라마 <천추태후> 등에 참여한 스턴트맨이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멧돼지의 액션뿐만 아니라 내면연기를 해낸 사람들이다.
-모형차우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권귀덕: 일단 재밌는 거 한번 보여주겠다. (그가 보여준 휴대폰 동영상에는 사람의 다리를 가진 멧돼지가 뛰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한국 촬영용인데, 미국에서 CG분량 촬영할 때는 다른 게 쓰였다. 한명이 가방처럼 메고 아래에는 바퀴가 달려 있는데, 다른 보조요원도 함께 조종하는 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람 혼자 이걸 메고 산을 뛰어다니니까 기립박수가 나오더라. 미국 스탭들이 와서 ‘굿 잡!’이라고 했다. (웃음) 박갑진: 높이로 치면 1m가 넘는다. 사람이 서 있는 상태에서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앞에 손잡이가 있어 이걸로 차우의 머리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돌릴 수 있다. 무게가 30kg 정도 되는데, 너무 힘들어서 오랫동안 연기하기는 힘들었다.
-선발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권귀덕: 일단 키가 크면 안된다. (웃음) 몸 아래에 걸리는 게 있으면 안되니까. 그래서 갑진이나 나처럼 하체가 튼실하고 힘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찾은 것 같다. 박갑진: 귀덕이 형이랑 나랑 이미지가 비슷한가보다. 내가 후반부 탄광촌 장면에 투입됐는데, 스탭들이 다른 사람인 줄 모르더라고. 권귀덕: 액션스쿨에서도 캐릭터가 겹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안 어울린다. (웃음)
-무조건 뒤집어쓰고 달리는 게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 박갑진: 처음에는 그냥 뒤집어쓰고 걸었다. 그랬더니 밋밋하다고 진짜 동물의 움직임 같은 긴장감을 연기해달라더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권귀덕: 나름 내면연기가 필요했다. (웃음) 특히 신경 쓴 건 마을잔치를 하던 창고에서 백 포수와 차우가 일대일로 마주보는 장면이다. 감독님은 지금 차우가 자기 애인을 잃었으니, 그런 내면을 묘사해달라고 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백 포수에게 다가가면서 얼굴을 약간씩 비꼬듯 틀면서 연기했다. 그때 딱 차우의 눈과 백 포수의 눈이 마주치더라. 모형 탈 안에 있었지만 나름 속으로는 차우의 슬픔을 연기하고 있었다. (웃음)
-그외 다른 장면은 없었나. 권귀덕: 차우가 처음에는 창고문을 들이받는다. 원래는 차우 머리가 철문을 뚫고 나오는 게 있었다. 입 부분만 나와서 포효하는 거지. 완성본에서는 잘렸다. 나중에 잔칫상을 엎고 사람들을 물어 던지는 장면도 대부분 모형차우로 연기한 거다. 사실 나는 그 장면에서 차우에게 물리는 사람도 연기했었다. 오지말라고 소리치는 대사도 있었는데, 역시 잘렸다. 박갑진: 형은 자기가 메인이라고 하는데, 내가 연기한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웃음)
-예전에도 모형 탈을 써본 적이 있나. 권귀덕: <차우>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동료들이 많이 썼다. <천추태후>에서는 곰이랑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전우치>에서 쥐랑 토끼 모형 탈을 쓰기도 했다. 쥐요괴랑 토끼요괴랑 싸우는 장면인데, 거기서는 아예 몸에 탈을 입는 방식으로 썼다고 하더라.
-액션스쿨에서 평소 그런 탈 연기도 훈련하나. 권귀덕: 그런 건 아니다. 탈을 쓰려고 스턴트맨이 된 건 아니니까. (웃음) 이런 거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박갑진: 힘은 들지만 위험하지 않고 재밌었다. 만날 땅에 처박히는 것만 하다보니 나름 신선함이 있더라.
-<차우2>가 만들어진다면 캐스팅 1순위겠다. 박갑진: 영화 마지막에 새끼돼지 눈빛이 변하지 않나. 대박나서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를 다시 찾아주지 않을까? 권귀덕: (웃음) 속편보다도 일단 이번에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서 큰 보람을 느꼈다. 일반적으는 무술팀 이름으로 나가는데, 이름이 올라갔으니까. 박갑진: 영화를 본 어떤 친구는 엄태웅보다 먼저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제일 큰 주인공이니까. (웃음) 자랑거리가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