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으로라도 책장이 술술 읽힌다고는 못하겠다. 존 드릴로의 <리브라> 이야기다. 미간에 주름을 잔뜩 잡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이야기와 의미를 파악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의기소침한 독자를 다독이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이야기에 대해 이미 꽤 잘 알고 있다는 사실. <리브라>는 JFK 암살사건을 둘러싼 세상을 그린다. 미국 안팎 정보기관의 음모, 리 하비 오스왈드의 어려서부터의 삶을.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미국 대통령 암살), 어떻게 그런 결과로까지 이어졌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있기는 할까?).
소설가 존 드릴로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암살사건(범인이 잡혔지만 그가 진범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방대한 자료가 밑바탕이 되었지만, 그래서 몇몇 장면에서는 마치 기억 속 장면을 낡은 사진으로 재확인하는 기분마저 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소산이다. 존 드릴로의 목소리를 빌리면 “나는 JFK 암살과 관련된 의문에 대해서 사실적인 해답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료 사이에 존재하는 필연적 공백을 상상으로 채워넣고 그렇게 또 하나의 길을 만들었지만 그 끝에 방정식 풀듯 깔끔한 해답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대화와 생각과 자료가 뒤섞이고 여러 화자 혹은 여러 주인공이 마치 포스트모던한 연극의 등장인물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놀랍고도 당연하게도, 그게 그 시대, 국적을 떠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최고 권력을 지닌 한 남자를 죽이고 싶어 했던(열망을 넘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추진했던) 그 이상한 시대를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제목 <리브라>는 리 하비 오스왈드의 별자리였던 ‘천칭자리’를 의미하지만 이 소설은 그의 균형이 깨지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과정을 집요하게 재구성한다.
“네가 개인적인 신경을 다 쏟아넣기로 한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너를 죽이는 거야. 네가 시인이라면 시가 너를 죽이는 식이지.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그런 식으로 죽음을 선택해.” <리브라>는 그 시대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들이 ‘그런 식’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천천히 읽어보시길, 그 시대의 혼돈이 발목부터 목까지 차오르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