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속설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극장들이 적자투성이로 파리만 날린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일단 지으면 현금이 쏟아진다’는 2000년대 초반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을 건 확실하다. 그런데도 극장체인 메가박스 인수전은 꽤 치열하다. 2007년 오리온그룹으로부터 메가박스를 인수한 호주계 맥쿼리 펀드는 최근 메가박스를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멀티플렉스 사업을 펼치는 CJ와 롯데뿐 아니라 SK, 신세계, 중앙일보, 일본계 자본까지 인수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7월29일 맥쿼리는 예비입찰 업체 중 CJ, 롯데, SK를 숏리스트에 선정했다. 숏리스트에 포함되면 본입찰을 하기 전 실사참여 자격을 갖게 된다. 이들 기업은 한달 동안 실사를 벌인 뒤 9월10일로 예정된 최종입찰에 참여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직영점 기준으로 12개 극장의 109개 스크린을 확보한 메가박스는 2007년 맥쿼리에 인수된 뒤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한때 CGV에 이어 업계 2위를 달렸던 메가박스는 롯데시네마에 자리를 내줬다. 이처럼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인수전이 뜨거운 건 바로 코엑스점의 존재 때문이다. 코엑스 메가박스는 강남의 요지에 자리할 뿐 아니라 좌석이 늘 가득 차기로 유명하다. 다른 극장들이 한산한 평일과 오전 시간에도 코엑스점만큼은 북적거린다. 행인, 특히 10대와 20대의 왕래가 압도적으로 많은 코엑스몰이라는 입지조건 덕분에 옥외광고 등에서 발생하는 수입도 만만치 않다.
수익성 외에 다른 메리트도 존재한다. 롯데는 2개관짜리 롯데월드점 말고는 강남권에 극장이 없기에 코엑스점이 절실한 입장이고, CJ 또한 코엑스점의 상징성에 주목하는 듯하다. 새로 극장업에 진출하려는 SK의 공식적인 입장은 알려진 바 없지만, 일단 SK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 대규모 광고를 제공하며, 소극적이나마 투자·배급사업을 펼쳐왔기 때문에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노렸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이 때문에 예비입찰 단계부터 관심기업들 대부분이 코엑스점만을 별도로 인수하는 방법을 문의했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코엑스점을 핵심으로 하는 메가박스 인수전에 관심이 쏠리는 건 결과에 따라 극장가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CGV가 37%, 롯데시네마가 20%, 메가박스가 10%대를 점유하는 시장에서 만약 메가박스를 CJ가 인수한다면 CGV는 극장업계의 절대강자가 될 것이다. 물론, CGV의 시장점유율이 50% 가까이 돼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 롯데가 인수한다면 롯데시네마는 CGV와 대등한 시장점유율과 영향력을 갖게 돼 극장가는 2강의 과점체제가 될 것이다. 반면, SK가 인수한다면 투자-배급-상영의 일관공정이 완성돼 SK텔레콤이 영화산업의 메이저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가장 큰 변수는 가격이다. 맥쿼리는 메가박스를 2800억원에 인수했지만, 현재 시장가치로는 그 이상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CGV 관계자도 “무리해서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쪽의 공식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인수경쟁이 과열된다면 어떻게 될지 그들 스스로도 지금은 모른다. 메가박스를 둘러싼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