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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다섯 남자의 짜릿한 촬영의 추억
정재혁 사진 최성열 2009-08-03

으아, 12층 옥상에 대롱대롱 매달려…

국가대표를 만났다. 스키점프 선수 5인. 국내에선 더도 덜도 없는 점프대 위 남자들이다. 주장 하정우, 7번 김동욱, 12번 김지석, 20번 최재환, 그리고 후보선수 38번 이재응. 개봉을 앞둔 이들은 마치 시상식을 앞둔 사람들 같았다. 팔팔 끓는 에너지가 흥분과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과거를 곱씹는 표정은 진지했다. 3개월의 훈련, 그리고 7개월의 촬영. 이들은 완전히 국가대표가 됐는지 모른다. 영화 <국가대표>는 배우의 열정을 그대로 담아 승리의 희열을 뽑아낸다. 좌충우돌과 시련을 한방에 날리며 잊지 못할 행복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렇게 관객을 웃고 울게 한다. 누구나 꿈꾸는 열정과 승리. 그 결실은 어떻게 나온 걸까.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정우: 사실 모두 처음 만나는 거였어요. 근데 시나리오의 인물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어요. 타이거월드라고 부천의 실내스키장에서 만났거든요. 바로 투입돼서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배우 김지석, 최재환, 김동욱이 아니라 그냥 칠구, 재복이, 흥철이로 보이더라고요. 형 동생의 느낌이 컸고. 그냥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할게요, 그래 말 놓을게. 뭐 이렇게 됐던 것 같고. 그래서 빨리 팀워크를 다질 수 있었던 거 같고.

김지석: 정우 형은 동생처럼, 캐릭터로 봐주셨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우 형 빼고 저희 넷은 다 배우 하정우로 보였습니다. (웃음) 어후. 첫 느낌의 아우라가. 칸 갔다 온 뒤라 살은 다 타고, 레이밴 선글라스 딱 끼고, 꽃무늬 남방 입었는데. 되게 셌어요. 배우 느낌 확 난다.

하정우: 지나고 나니가 완전히 교회 형? (웃음)

김지석: 알고 나니까 더 편하고 동생들을 잘 챙겨주는 거 같고. 먼저 다가와줬고.

최재환: 분위기 메이커예요.

하정우: 불미스럽게도 오늘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웃음) 우리가 합숙을 했어요. 타이거월드에서 스키연습을 시작해서 무주에서 합숙을 했고. 스키점프 선수들이 하는 프로그램을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따라하면서 같이 생활했고. 근데 무주가 사람들도 없고. 또 스키장이 여름에는 휑해요. 그럼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맥주 마시는 것밖에 없거든요.

김지석: 남자들도 모이면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최재환: 또 스키를 배워야 하니까. 정우 형, 지석이 형은 잘 타거든요. 그래서 동욱이랑 저랑 재응이 자세 봐주고.

김지석: 정우 형이 동욱이 가르칠 때 처음부터 상급자 코스 데려갔었지.

하정우: 뭐 운동하고 놀았어요. 남자들끼리 모이면 일단 프로그램하고 나서는 축구하고. 대표팀 선수들하고 팥빙수 내기하고.

김지석: 근데 연습이 정말 믿음이에요.

김동욱: 뛰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믿어야 하고, 받는 사람은 뛰는 사람 믿어야 하고요. 봉고차 위에 올라가서 연습하는 것도 실제로. 슬레이트 밟고 올라갔어요. 성동일 선배가 운전하고.

하정우: 일반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거냐고 할 수 있는데. 스키점프대에 앉아 있는 거 있잖아요. 출발하기 전에. 그 체감 온도가 12층짜리 아파트 옥상 난간에 스키신발 신고 발 대롱대롱한 상태에서 걸터앉아 있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대사하고 호흡하고. 할 거 다 해야 하는 거고. 슛 하고 나면 정말.

김지석: 으악. 그 공포감이.

하정우: 날씨도 춥지. 또 로케이션이 정말 많았어요. 105회차 정도 찍었나? 왜 나무에 매달려서 하는 연습이 있어요. 그거 하나를 하려고 진안에 가서 찍었어요.

이재응: 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오줌 쌀 뻔했어요.

하정우: 싼 게 아니었나.

최재환: 쌌잖아. (웃음)

하정우: 점프만 빼고 다 했다고 보면 돼요. 처음엔 쉽게 봤거든요. 안 어려울 줄 알았는데.

김동욱: 저는 좀 생소해서. 그냥 겁이 없었어요. 잘 몰랐기 때문에. 근데 촬영 들어가면서 뼈저리게 느꼈죠.

김지석: 왜 산 정상에 올라가면 가슴이 확 트인다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무주 처음 구경가서 점프대 정상에 섰는데 숨이 막혔어요. (웃음) 진짜 처음 봤어요, 그런 슬로프. 아래를 보면 사람이 점으로 보이거든요. 근데 촬영해야 한다니. 아 죽었다.

하정우: 오죽했으면 얼마 전에 꿈을 꿨는데. <국가대표> 크랭크인을 하는 거야. 악몽이었어요. 그걸 다시 한다고 생각해봐. 7개월 동안. 아~.

이재응: 저는 사실 어려웠어요. 정우 형이 좀 무서웠어요. 제가 스키 연습 첫날 지각을 했거든요. 근데 제가 인사를 했는데 다른 형들은 받아줬어요.

김지석: 나한테 이야기했다. (웃음)

이재응: 근데 정우 형은 못 봤나봐요. 인사했는데 대꾸를 안 해서. 화나셨나보다 생각하고 근처를 안 갔어요. 욕먹을까봐. 혼날까봐. 형은 처음에 말이 없어요. 나중에는 장난도 치고 그러는데. 제가 막 사교적이지 않아서. 말이 별로 없고. 낯선 사람 보면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최재환: 재응이가 얼마나 내성적이냐면요. 성동일 선배가 집이 같은 인천이라 촬영이 끝나면 무주에서 인천까지 태워줬어요. 그럼 보통은 고맙기도 하고. 선배님한테 몇 마디 말도 하고 그러잖아요. 3시간이나 가는데. 근데 재응이는 차에 타면서부터 이어폰 끼고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웃음)

하정우: (웃음) 인사를 못 봤어요.

이재응: 그러다 나중에는 좀 어이없는 장난을 쳐서. (웃음)

최재환: 너가 이제 다 고발하는구나.

이재응: 말을 이상하게 랩식으로 하는 거예요.

하정우: 아. 맘마미미. 스위리바기방. (웃음) 이름이 봉구예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놀린 거고. 놀 게 없으니까. (웃음)

김지석: 전 아무래도 칠구랑 봉구는 형제니까. 또 친동생이 재응이랑 동갑이에요. 그래서 동생 대하듯이 했죠. 근데 끝나고 나서 조금 후회했어요. 제가 극중에서 봉구를 많이 때리잖아요. 진짜 리얼하게 할걸. 차라리 이한위 선배님처럼 세게 때리고 재환아 미안하다 했음 됐을 텐데.

최재환: 제가 맞는 연기 많이 해봤지만 정말 드라이버로 맞는 게 이렇게 아픈 줄 몰랐어요. 수건도 두장 댔거든요. 근데 잘 때 무심결에 닿으니까 아픈 거예요. 그래서 매니저 동생이 베개를 대주고 그랬어요.

하정우: 우리 이상한 데서 NG가 많이 났던 것 같다. 뭉쳐 있으면 웃겨요. 또 만지고. 너무 추우니까. 대기하고 있으면 이렇게 붙어요. (웃음) 무의식적으로 재환이 등에 손 넣고. 형 한번만 할게.

최재환: 전 코치님이 동욱이 타게 하려고 망치질 하는 장면도 추억이 돼서. <애국가> 장면에서 눈물이 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런 게 있어서인 것 같고.

하정우: 진짜 오랜 시간 동안 국가대표로 생활한 거 같아요. 긴 만큼 그 안에서 모두 여유를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지석이도 이 영화에 올인했고, 나 역시 그랬고. 성동일 선배도 모든 거 고사하고 이거 하셨고. 동욱이, 재환이도 그랬고. 재응이는 학교까지 안 가면서. 으하하하. 왜 몽타주로 우리가 좌충우돌하면서 성장하는 걸 스케치한 장면이 있어요. 그게 참 뭉클해요.

김동욱: 저도 형들 말처럼 그 몽타주가 뭉클해요. 아~. 내일 시사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최재환: 잠 안 올 거 같아.

김지석: 만날 이야기했거든요. 어떻게 할까. 뭐 입을까 하면서.

김동욱: 내일 스크린에 영화가 틀어져야 실감이 날 거 같아요.

하정우: 그냥 조금 무서운 건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국가대표>에 취해 있다는 거예요. 140여명 스탭들과 감독님과 지지고 볶고. 울고 기뻐하면서. 흥행 여부와 달리 지금까지 계속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 시간이 영원할 것 같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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