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나를 버렸을까?” 30년 이상 같은 질문을 해온 남자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펜을 들었다. <지미 코리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이하 <지미 코리건>)은 저자 크리스 웨어의 자전적 경험이 모티브가 된 그래픽 노블이다. 주인공 지미 코리건은 평범하다 못해 볼품없는 30대 남자다. 소심한 그의 어깨는 둥글게 굽었으며 풀 죽은 눈빛은 어떤 시선과도 마주하지 못한다. 인간관계라고는 양로원에서 매일 전화를 거는 어머니가 전부다. 그런 그에게 편지 한장이 도착한다.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자는 아버지의 초대다.
<지미 코리건>은 이미지의 사용과 상징이 풍부한, 참신한 시각언어로 완성된 성인용 성장담이다. 일견 팝아트 그림책이란 착각도 들지만, 페이지 한장 한장에 담긴 의미의 무게는 팝아트의 가벼움에 비할 게 아니다. 어두운 주제와 상상 속에서만 ‘가장 똑똑한 아이’가 되는 주인공의 현실도피적 성향은 서사의 흐름을 분절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다른 이야기도 끼어든다. 지미의 할아버지인 제임스의 어린 시절이다. “아이 같은 건 원한 적 없다”며 벨트를 휘두르는 아버지 손에 자란 제임스는 현재는 97살의 완고한 노인이다. 그러나 100여년을 오가는 두 이야기는 윗세대로부터 이어진 ‘아버지의 부재’라는 아픔으로 연결된다. 잿빛으로 채색된 그림보다 더 우울한 기운에 책읽기를 멈추고 싶을 땐, 잠시 쉬었다 되돌아가기를 권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놓친 프레임을 발견하고, 새로운 통찰력으로 지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미에게 있어 아버지의 초대는 꿈에서나 만나는 행복하고 안전한 세상으로의 탈출구였다. 두려움과 떨림을 안고 발걸음을 내디딘 곳에서 지미는 그러나, 똑같이 비루하고 똑같이 초라한 아버지를 닮은 자신을 재발견했을 뿐이다. 2000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 대해 <가디언>은 “예술가의 비전을 한계로 밀어붙여 성취한 희귀하고 고무적인 사례”라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올해(2000년)의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작업은 크리스 웨어가 스스로에게 행한 성실하고 고독한 치유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