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팬덤은 달랐다. 그는 숭배와 경의의 대상이 아닌, 언제나 모방의 대상이었다. 그가 자주 갈 것 같은 레스토랑을 가고, 그 남자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그가 즐겨 드는 만화를 빌려 보며 그의 감수성을 체험하고자 했다. 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시했던 라이프 스타일의 영향 이상으로, 그 직후 세대에게 유희열의 모든 것은 앞선 감각이자 새로운 방식의 태도였다. 그리고 심야 자율학습의 여고생들이 알아왔던, 이제 20대 후반이 된 그녀들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유희열의 팬층도 어느덧 확대됐다. ‘토이남’이라는 낯간지러운 명칭을 꺼려하던 남자들마저 이제 너도나도 유희열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음을 ‘커밍아웃’하기에 이르렀다. 유희열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취향이었고, 그걸 알리는 건 곧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종의 합의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2009년 여름, 절대 TV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라디오 스타 유희열이 TV로 오는 ‘배신’을 감행했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징후를 가득 품고서. 그런데 심야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진행자로, 유희열은 유희열다웠다. 예의 화려하고 저질스런 입담을 꺾지 않은 까닭에 방송은 여느 토크쇼보다 생기있고 유머러스해졌으며, 그가 소개해주는 음악은 매회 방송과 동시에 화제가 됐다. 열 가지가 좋아도 한 가지가 맘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노’를 하던 남자는 이제 아홉 가지의 장점을 끌어안으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적 감식안을 좀더 폭넓은 대중과 나눌 수 있는 매체가 TV라는 것으로 자신의 ‘배신’을 설명한다.
-TV까지 소화하느라 요즘은 바쁘겠다. 정신적으로는 바쁜데 사실 물리적으로는 바쁘지 않다. 방송은 녹화 하루 더 하는 것 정도. 안 바쁘다.
-무엇이 그리 괴롭히던가. HD TV에도 끄떡없는 우윳빛 피부 아닌가. 무대에 서는 것 자체는 어색하지 않다. 공개방송이나 공연을 해서 무대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어색한건 화면에 나온 나를 보는 거다. 방송 출연하고 나서 피드백들도 생경하다. 예상은 했지만 불편해지는 일도 생긴다.
-방송이 좀 무서울 것 같긴 하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오해의 여지도 많은 게 TV 매체다. 이번에 좀 느꼈다. 휴가로 ‘롬북’이라는 델 다녀왔는데 비행기를 타니까 아주머니들이 다들 알아보고 한마디씩 건네더라. 그런 거야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장점도 있다. 아기를 데리고 유치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아, 이분이 아빠 되시니’라며 더 잘해주는 것 같더라. 아, 역시 유명인이 되니 내 아이도 더 신경 써주고 좋구나 싶었다.
-그러게 말이다. 벌써 화려한 입담과 연륜, 영향력으로 MC계의 톱5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지금 날 놀리려고 하는 인터뷰인가? (웃음)
-그럴 리가 있나. 사실 TV 방송 활동 안 할 사람을 100명 꼽으면, 그중 100번째가 유희열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의는 자주 받았다. 그런데 TV라는 매체가 귀찮더라.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이 귀찮고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거절하러 나간 자리였는데, 김광수 PD가 ‘이번엔 조금 희생을 하는 게 어떻겠냐’ 하더라. 대개는 달콤한 얘기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런 말 안 하더라. “라디오에서 그렇게 당신이 음악 트는 것에 신경 쓴다는 얘길 들었는데 TV가 훨씬 파급효과가 크지 않나. 인디 가수에게 라디오에서 열번 곡 트는 것보다 TV 한번 나오는 게 훨씬 영향력 큰 걸 알 텐데…”, 이런 말을 하는 거다. 그 얘기에 띵했다. 생각해보니 조금 더 나이 먹으면 올드해질 것이고 어렸으면 운신의 폭이 좁았을 것 같고. 지금이 적기인 것 같더라. 그래서 결정했다.
-공중파인데 겁도 없이 라디오의 유머를 그대로 구사한다. 사실 게스트를 칭찬하긴 쉽지만, 까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거침없다. 단순한 논리다. TV를 발판 삼아 뭘 확장하고픈 마음이 요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미지와 입신을 더 굳혀서 광고라도 찍고 MC를 하거나 그런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쉽지가 않다. 하던 대로 하는 거고 스탭들에게도 수차례 그렇게 요청했다.
-그럼 역시 희생인가. 대한민국 인디신의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인쯤으로. 희생이라곤 생각 안 한다. 내 모든 행동의 근원은 먹고살기 위한 거다. 라디오를 하는 것도 좋아서 하는 거지만 한편으론 그걸로 내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소개하는 걸로 그들이 도움받는 게 아니라, 남들이 소화를 좀 못하는 사람을 내가 소화하는 정도다. 대다수의 제작자들이 소개할 창구가 없다고 하는데 방송 3사, EBS에다 케이블 채널, 이 정도면 많은 거 아닌가. 이걸 더 잘 이용하면 되는 거다. 본인들이 싫어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순위 프로그램도 나갈 수 있다. 이 신에서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면 다들 여기저기서 부르고 싶어 하지 않나. 장기하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기준이 있을 것 같다. 섭외에는 얼마나 관여하나. 처음 1회 다 섭외한 걸 빼곤 전혀 관여 안 했다. 대신 방송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자주 회의를 했다. 난 지금도 TV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고, 또 그 속성을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매회 끝나면 술을 마신다. 오늘은 어땠다 저땠다, 지금 당신들이 프로그램을 조금 더 활성화하기 위해 너무 대중적으로만 간 건 아닌가 확인을 한다. 프로그램 특성상 80%가 섭외에 달려 있으니 민감한 부분이 있다. 그러니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난 뭘 하든 재밌는 게 좋다. 선곡은 좋게, 멘트는 저질로~. TV도 그렇게 하고 싶다.
-라디오에선 실제로 유희열의 음악적 선택이 음악을 섭취하려는 이들에게 파장을 일으켰다. 방송이 벌써 10회가 넘었는데 TV도 그런 효과가 나타나던가. 라디오를 하면서 느끼는 온도는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유희열의 FM음악도시>는 주청취자가 20대였다. 그땐 내가 얘기하는 게 메이저였고, 시시껄렁한 얘길 해도 영양가가 있었다. 내 주변에 있는 윤상, 윤종신, 김장훈을 쓰면 그게 바로 대세였던 시절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다르다. 어제 (윤)상이 형이랑 (조)원선 출연분을 녹화했는데 방청객이 잘 모르더라. 지금 20대가 10년 전엔 초등학생이었다. 물론 이미 모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황하진 않았다. 다만 인디 뮤지션이 출연했을 때 조금 더 유연한 MC로서 ‘이 사람 들어볼 만하네’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 이런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기자회견할 때 앞으로 섭외 희망 리스트에 조용필, 나훈아, 서태지를 꼽았다. 음악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라 꼽았다. 달변가건 아니건, 인기가 있건 그런 거 다 떠나 음악을 직업으로 가진 MC가 누굴 모시고 싶냐면 역시 음악적으로 업적을 이룬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게 되는 거다.
-그때도 카라가 등장했을 때처럼 주저앉는 거 아닌가 걱정된다. (웃음) 그들이 출연을 한다면 뭘 물어볼 건가. 누가 나오든지 난 다 유쾌하다. (웃음) 그분들은 별 말 안 해도 음악만으로 설명이 다 될 것 같다.
-취향을 드러내는 데 후한 반면, 거꾸로 실제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 이중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잡지에서 ‘당신은 토이남입니까’ 하는 체크 문항을 읽었다. 20개 다 동그라미 치면 옆에 ‘당신 혹시 유희열?’ 이렇게 써 있더라. 나도 체크해봤는데 동그라미가 세개 나왔다. 내 생활은 전혀 토이남이나 초식남 이런 게 아닌 거다. 진짜 게으른데다 예민하거나 여성적이지도 않다. 다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다. 그랬더니 난 남들보다 좀더 디테일하긴 하더라.
-실연이나 아픔을 뭉뚱그려 형용사로 표현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건 정말 탁월한 유희열만의 감각이다. 영화 얘기로 설명해볼까. 다른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피부 깊숙이 빡빡 와닿는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이와의 슌지의 <4월 이야기>다. 여자친구랑 같이 봤는데, 그 친구는 지루해하는데 나는 깊숙이 와닿더라. 음악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저 사람 같은 느낌이었겠구나, 싶었다. 사춘기에 관련된, 청춘에 관련된 것들. 이런 걸 직업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보니 내 생활에 대한 노출이 아닌 취향이 된 거고, 그걸 정서적으로 공유했던 사람도 있었고. 바게트, 에스프레소 같은 몇 가지 단어들로 규정된 거다. 기자분들은 그런 얘기를 쓰기 좋아했고, 가요신에서 그런 디테일한 부분 쓰는 남자가 많지 않았고 그러면서 토이남이 확립된 것 같다.
-이와이 순지가 순정만화적인 감수성 뒤에 변태적인 성향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 아나. 그래서 더 끌리지 않았을까. (웃음) 짓궂다 그분이. 그게 포르테인 거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그렇게 되는 거다. (웃음)
-20대엔 당연한 감성이지만, 40이 낼모레라면 감정도 변하지 않나. 그런 게 작업에도 반영될 것 같다. 20대 감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겸연쩍고 그리워진다. 저런 찰나와 순간들이 존재했지만 결국에 나를 둘러싼 지금의 문제들은 내 세대의 문제. 40대를 코앞에 둔 사람으로서의 문제다. 10년 전만 해도 그런 문제는 없었다. 그땐 음악 아니면 내 여자친구가 제일 중요했다. 지금은 음악과 가족과 어머니의 건강문제와 여러 가지 것들이 생겼다. 당연히 변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고 음악도 변화가 있을 거다. 하지만 굳이 음반을 통해 그걸 막 풀어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조금 더 견고해진 시선과 냉소적인 시선들이 들어가는 정도다. 나이가 들어도 엑기스에 대한, 결정체에 대한 그리움은 존재하는 거고, 그건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변하지 않는 감수성이 주변의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취향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만나는 사람도 늘 꾸준하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는 17년 됐고. 음반작업 해주시는 포토그래퍼 안성진씨는 늘 같이했고, 세션맨도 늘 똑같다. 난 그게 좋다.
-의리파 같다. 혹시 <영웅본색>의 후예인가. 의리파라서이기보다 주성치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좋은 이유가 그가 늘 비슷비슷해서다. 주성치 옆에 오맹달이 계속 나오는 게 감동적이다. 내게 결과물이 얼마나 쌔끈하게 빠졌는지는 안 중요하다. 내가 오케이하는 순간만 되면 된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도 상관없다. 필요없다. 비교하는 순간에 비극이 탄생하는 거고, 그래서 난 비교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나의 베스트다, 라고 나는 믿는 거다. 난 내 사람들이 좋다. 공연할 때도 늘 똑같은 사람들이고, 그렇게 나는 흘러가는 거고, 그런 결과물이 베스트다. 내 작업물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다.
-친분이 있는 이들에겐 더없이 좋지만, 그런 성향이 오히려 유희열을 알고 싶어 하는 새로운 타인에겐 벽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게으르고 이기적인 면이 좀 있다. 누구를 만나면 그외의 여러 자리에 가는 걸 좀 꺼리기 때문에 잠수를 잘 탄다. 혼자 있거나 편한 사람들과 있는 게 편하다. 너무 친해지면 꼭 안 보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나. 근데 난 안 보는 사람은 없다. 만났을 때 너무 가깝지 않기 때문에 유쾌할 수 있는 거다. 물론 힘든 부분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주 만나서 그렇다기보다 처음부터 그런 관계로 만났기 때문이다.
-원성도 많이 듣겠다. 원성도 듣는다. 지금 말하다보니 난 나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많지 않다. 상처도 잘 안 받고, 좀 건조한 편이다. 나를 까칠하다고 생각하거나 거리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그런 것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남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그런 건 싫어한다. 그러면 내가 힘드니까.
-음반을 소개하는 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선 도움이 되는 대인관계다. 청탁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강직함이 엿보인다. 그런 건 내가 원래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 걸 거다. 녹음실 스탭으로 시작했으니 가수 대 작곡자 관계가 되는 거다. 난 비즈니스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도 잘 안 만난다. 만나서 작전 짜거나 그런 일도 없고,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거나 전화가 쉽게 오고가고 이런 일들이 많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보니 새로운 이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 유일한 창구가 라디오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부탁을 하거나 그런 건 분위기상 불가능하지 않나. (웃음)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음반도 잘 안 내는데(웃음), 그럼 라디오는 밤에만 하고, TV는 하루 녹화니, 그 나머지 시간엔 대체 뭘 하나.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있는다. 아내랑 거의 다 있다. 한 24시간. 그렇다고 집 안에만 있는다는 게 아니라 같이 시장도 가고 카페도 가고 밥도 먹으러 간다는 의미다. 그 정도?
-완벽한 남편형이다. 아닐 수도 있다. 아내는 만날 붙어 있으니 이 인간이 왜 안 나가, 하고 짜증날 수도 있다. (웃음) 물론, 작업을 할 때는 일 모드로 바뀐다.
-그 일 모드는 언제쯤 발동하나. 토이 6집에 안 쓰고 쟁여놓은 곡이 많다고 들었다. 5집과 6집 사이의 긴 간극이 다시 재현되는 불상사는 없을 거라고 기대해도 되나. 벌써 6집 나온 지도 2년이 지났다. 근데 6집 때 써놓은 곡으로 내진 않을 거다. 난 곡을 모아놓고 그때 안 쓰면 다 버린다. 쟁여놓고 쓰는 편이 아니라서. 지금은 그래서 하나도 써놓은 게 없다. 물론 6집 나올 때와는 다를 거다. 그땐 라디오도 안 하고 활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였으니까. 감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마치 은퇴한 축구선수가 다시 돌아온 거랑 비슷한 상태였다. 지금은 공을 차고 있진 않지만 그라운드에는 만날 나가는 사람이니 감각이 배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물론 ‘토이’ 외에 ‘유희열’ 이름으로도 음반 작업을 하고 있어서 예전보단 빈번한 느낌이다. ‘유희열’로 나오는 건 16mm 단편영화 찍은 거라고 볼 수 있다. 토이는 35mm 장편영화다. 대행사도 끼고 스탭고 꾸리고, 폼나게 극장에서 걸어야 하는 영화다.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거다. 그런 정도의 차이. 유희열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은 결과에 아무런 상관없이 작업한다. 그래서 작업도 금방 끝낸다. 한 일주일 만에. 근데 ‘토이’는 1년, 2년 걸리기도 하는 거다.
-변하지 않는 감성을 모토로 하지만, 음악적인 발전과 변화는 늘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언제 될지 모르지만 다음 앨범에 대한 희미한 이미지라도 제시해달라. 기자들은 주로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번 가사의 내용이 밝아졌다 아니다 뭐 이런 것들. 근데 나에게 가사는 2차적인 문제고 음악을 만드는 게 훨씬 고통스럽다. 곡을 만드는 시간이 10시간이라면 음악이 9시간 걸리고 1시간이 가사 쓰는 시간이다. 음악을 뭘로 만드느냐가 중요해지는 거다. 나처럼 음악 만드는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끼는 건 얼마만큼 견고해지고 탄탄해졌느냐다. 판매도 중요하지만 내가 변화하고 발전했느냐, 그 한끗이 달라졌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그런 것에 예민하다 보니 음악도 막 찾아서 듣게 되는 거다. 영화로 따지면 시나리오 작업 같은 거다.
-음악 외의 최근 관심사가 궁금하다. 책이나 영화 어떤 것이라도. 책은 많이 보는 편이 아닌데 박민규씨 책을 좋아한다. 김훈씨 책 같은 유명한 책들도 보고. 만화책은 그보다 조금 더 열심히 보는 것 같다. 영화는 극장을 거의 가지 않는다. 좀체 뭐에 푹 빠지는 일이 없이 두루두루 보는 편이다.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었고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만약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제일 광적으로 보는 건 여행에 관련된 것들이다. 사이트, 책. 모든 것들. 그땐 철두철미해진다. 가격, 지도 이런 걸 미친 듯이 본다.
-자주 여행을 가나보다. 아니다. 못 떠나니까. 그런 거로라도 대리만족하는 거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그럼 여행 갈 땐 어떤 음악을 챙기나. 항상 똑같은 것만 가져간다. 여름 여행이냐 겨울 여행이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는데. 여름용은 카에타노 벨로소, 요요마의 <오브리가도 브라질>. 최근엔 페퍼톤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거 가져가고… 거의 보사노바다. 겨울용은 재즈 연주음악을 많이 가져간다. 겨울 분위기 나는 브래드 멜다우, 팻 매스니 <비욘 더 미주리 스카이>. 그리고 요즘엔 (김)연우 앨범 <연인>. 겨울에 작업해서 그런지 그 노래 들으면 겨울 생각이 난다. 휴가니까 현지의 음악을 찾아 듣거나 새로운 걸 듣고 그러진 않는다. 항상 똑같은 걸 틀어놓으면 여행 온 것 같다.
-당분간 그 음반들 챙기기 힘들겠다. 다른 프로그램들에서도 MC 제의가 꾸준하다던데. 의외로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그런 차원에서 제안 같은 건 들어오는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사 분들도 다 알고 짧게 거절을 해도 인정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선은 정말 여기까지다.
-인터뷰 응해줘서 고맙다. <씨네21>을 좋아한다. 유일하게 즐겨본 잡지다. 내 노래 중 몇 곡은 씨네21의 리뷰 보고 영감을 얻거나 이미지가 떠 올라서 쓴 거다.
-놀랍다. 어떤 곡들을. <햇빛 쏟아지는 날들> 리뷰 보고 ‘거짓말 같은 시간’을 썼다. 거기 카피 문구가 ‘햇빛이 쏟아지던 날...’이런 거였는데 확 그림이 떠올랐다. <화양연화> 리뷰를 보고 쓴 게 ‘두 사람’. 기사가 ‘두 사람이 있었다...’로 시작되는데 그 문장이 너무 좋아서 썼다. 최근엔 <달려라 허동구> 기사에서 햇빛이 빰을 간질여야 아침이 오는 걸 아는 아이, 라는 문장이 너무 좋았다. 직접적으로 햇빛에 잠이 깬다가 아닌 그런 표현이 좋더라. 그래서 어떻게 든 가사를 서 보려고 했는데 아직 못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