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시종일관 격렬한 감정을 대단히 정교한 합으로 연기해야 한다. 김무열: 원작에선 상황이나 묘사가 더 치밀한데, 뮤지컬 대본은 그 내용을 음악과 안무로 표현하다 보니 더 함축적이고 타이트하다. 사실 그 짜인 틀 안에 적응하면, 어느 정도는 안정되고 보기에 문제없는 공간이 나올 거란 생각을 했다. 이제 와선 그게 가장 큰 함정인 것 같다. 꽉 짜인 틀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그걸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기량에 다다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매일밤 감수성을 건드릴 만한 음악이나 영화를 보고 듣다가 잠이 든다. 어떨 땐 되게 끔찍한 것도 보고, <해롤드와 쿠마>처럼 말도 안되게 웃긴 것도 보고.
-현재 시점에서 각자 맡은 배역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조정석: 처음엔 모리츠의 감성적인 부분들을 좀 비우려고 했는데, 이제 와선 어떻게 더 채워넣을지 고민 중이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느껴지기 때문에 하다못해 매일 글로도 끼적거려본다. 그러면서 몰랐던 점들이 하나씩 나온다. 수확이다. 김무열: 처음 대본을 볼 땐 멜키어가 어쩔 수 없이 애구나 싶었다. 요즘은 드디어 이해가 된다. 내가 유치해진 건지, 아니면 공연에 익숙해져서인지, 하여튼 그 친구와 가까워져서 반갑다. 그러면서 캐주얼해진다. 무슨 말이냐면, 처음엔 별 느낌 없다가 뭔가 다가오면 그만큼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 말 그대로 딥 임팩트처럼. 연출 선생님이 그러셨다. 아이들이 화약을 갖고 놀다가 터지는 바람에 손목이 날아갔다, 여기서 잘렸다, 어? 하는 느낌이라고. 조금씩 알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모리츠에게 자살 직전 일세와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복잡 미묘하지 않을까 싶었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의 갈림길 아닌가. 조정석: 요즘 들어 모리츠의 죽음이 결코 안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슬프면서도, 본인이 생각했을 때 결코 나쁘지 않은 결론이니 선택하지 않았는지 공감을 많이 했다. 모리츠도 분명 그럴 거다. 악몽에서 꺼내달라고 천사에게 부탁하는데, 일세가 다가와 말을 건다. 예전 공연에선 ‘그래 넌 얘기해라’는 태도로 들었는데, 요즘엔 일세에게 열심히 귀기울여 듣고 있다. 모리츠가 좀더 이성적으로 들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죽음이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어서 선택했다는 걸 납득시킬 수 있지 않을까.
-멜키어가 자신도 모르게 벤들라를 때리는 장면은 캐릭터의 극심한 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순간이다. 김무열: 어떻게든 감정선을 만들어보려고 생각을 많이 했다. 저지르고 나서 알게 되는 게 더 중요하다. 15살 소년이 그렇게 되는 계기가 분명히 있는데,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내 몸뚱이로 생각해봤자(웃음) 단순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머리로 알아서 느끼는 것과 몸으로 덤비고 나서 느껴지는 게 분명히 다르다. 그 차이를 생각 중이다. 멜키어가 자의에 의해 변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몰랐던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이니까. 아직까지 상대 배역과 더 많이 얘기해봐야 할 부분이다. 내 안에만 갇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관객의 반응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 드나. 아무래도 2막 중간의 <Totally Fucked>에서 가장 열렬하더라. 조정석: 난 일찍 죽지 않나. (웃음) 무대석에 앉아 공연을 보노라면, 중요하지 않은 신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노래가 없다. 예전에는 <The Bitch of Living>에서 한번 터뜨리고 <I Believe>로 잘 마무리하고, 그 다음 <Totally Fucked>로 달리고 이어 <Those You’ve Known>로 가라앉고, 이런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잘 모르겠다.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극이 시작하고 <The Song of Purple Summer>로 끝날 때까지 감성적인 부분의 끈을 놓지 않고 가야 하는데, 우리가 자꾸 놓치는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선 물론 <Totally Fucked>가 제일 신나겠지만, 배우 입장에선 하나같이 다 어렵다. 김무열: <Totally Fucked>는 정말 어렵다. 물론 들으면 되게 신나고 정서적으로 확 닿는다. 어른들이 멜키어를 내모는 중요한 노래기도 하고, 배우가 전원 다 나와 거센 정서를 토해낸다. 멜키어는 중앙에 서서 그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아 여과해줘야 한다. 그래서 자꾸 무거워지는 것 같다. 확실히 감성이, 몸이 15살이 아니구나 싶더라. <The Bitch of Living>에서도 비슷하게 억압된 상황에서 에너지가 뿜어져나오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게 흘러가야 하는데… 가장 크게 딜레마에 봉착하는 노래인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는다면. 김무열: 원래는 <Those You’ve Known>이었는데, 요즘은 엔딩송 <The Song of Purple Summer>가 좋다. 노래하면서 다같이 하나되는 에너지에 감동받을 때가 많다. 조정석: 자꾸 바뀌는데… <Don’t Do Sadness>를 가장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엔 벤들라의 노래 <Whispering>이 확 와닿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