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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시각적 충격, 기대해도 좋다
윤제균(영화감독) 2009-07-28

윤제균 감독에게 듣는 한국형 휴먼재난영화 <해운대> 제작과정

드디어 <해운대>가 그 뚜껑을 열었다. 올해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의 영화, 한반도에 쓰나미가 들이닥친다는 과감한 상상력, 그리고 할리우드 기술과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해운대>는 올여름 가장 뜨거운 한국영화다. 윤제균 감독으로서는 주변의 각종 우려와 더불어 스스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재난영화를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수년간의 준비기간 자체가 고스란히 고뇌의 시간이었고,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다짐의 시간이었다. 이에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의 구상과 CG작업에 관한 정성스러운 제작일지를 보내왔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때 나는 해운대에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부산 동래 충렬사 부근 낙민동에서 살았고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땐 어머니가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사실 때라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다가 동남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만약 매년 100만 인파가 모이는 해운대에 저런 재난이 발생하면?’이란 막연한 상상을 하게 됐다. 그 상상이 <해운대>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엔 <해운대>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난관을 거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재난영화는 만들 능력이 안돼!’라는 불신과 ‘코미디 감독인 윤제균이 재난영화를?’이란 의심의 시선들. ‘그럼 우리나라는 만날 똑같은 장르의 영화만 만들어야 하나요? 우리도 새로운 장르에 계속 도전해야 발전이 있을 것 아니냐’는 나의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공허한 외침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그때의 외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5년간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불신과 의심의 시선들이 정신적인 의지에 심한 생채기를 냈고, 스스로도 그러한 공격 앞에 무기력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나의 이러한 진심에 어렵게 손을 내밀어준 곳이 CJ엔터테인먼트였다. CJ 식구들과 수없이 많은 회의로 머리를 맞댄 결과 <해운대>는 어렵게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재난영화 공식 따를 것인가, 개발할 것인가

내가 이런 제작일지를 쓰는 것이 <해운대>가 처음이다. 진솔하게 <해운대>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해운대>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이 바로 시나리오였다. 기획단계에서 이미 <투모로우> <일본침몰> 등 전세계 재난영화란 재난영화는 수백편도 넘게 봤는데, 제일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재난영화가 ‘영웅 스토리’였다는 사실과 초반엔 약하게, 중반에 보통의 재난, 그리고 절정부엔 거대한 재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플롯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즉, 따라하기는 싫지만 공식화된 재난영화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하느냐, 아니면 힘들더라도 새로운 우리만의 플롯을 개발하느냐가 시나리오 시작 전 나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나와 함께 시나리오를 같이 썼던 김휘 작가와 <해운대>의 제작총괄을 맡은 길영민 이사, 이렇게 세명이서 해운대 ‘씨클라우드 호텔’에 한달여를 머물면서 이런 논쟁만 계속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비록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아무리 힘들더라도 새로운, 우리만의 재난영화를 만들자!’였다. 그날 밤, 뭔가 대단한 결단을 한 것 같은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축하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결정이 우리를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로 인도하게 될지를….

수백만명 인물에서 세 커플로 압축하기

먼저 세쌍의 커플을 정하기로 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숨이 턱 막혔다. 해운대를 삶의 터전으로 사는 해운대구 구민만 40여만명, 게다가 피서철이면 해운대에 찾아오는 전국 각지의 피서 인파만 수백만명… 과연 누구를 메인 인물로 선정할 것인가? 우리는 각자가 생각한 수백명의 인물을 도표로 그려놓고 ‘이 인물은 이래서 안돼!’ 하는 식으로 한명씩 줄여나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난상토론을 거친 끝에 끝까지 살아남은(?) 인물들이 우리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해운대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대표적인 인물 만식(설경구)과 연희(하지원), 동춘(김인권), 그리고 해변의 구조대원 형식(이민기)과 피서객을 대표하는 젊은 청춘 희미(강예원), 재난영화에 빠져서는 안되는 인물 지질학자 김휘(박중훈)와 그의 전 부인이자 해운대에서 일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유진(엄정화). 이렇게 크게 세 그룹이다.

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탈락한(?) 인물들을 보면, 결혼 7년 만에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진 뒤 피서를 온 가난한 부부, 백사장에서 치킨을 배달하는 착한 배달원, 해운대 피서철 스케치를 하러온 방송국 PD와 촬영감독, 파출소 순경과 근처 다방 여종업원, 소매치기와 그를 쫓는 형사,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가난한 외국인 부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운대에 피서를 온 시골 부부, 게다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애완견까지. 각자가 나름대로 꽤나 근사한 드라마를 가진 인물들이었지만 모두를 담을 수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탈락시켰다. 수많은 인물들이여! 다음에 다른 영화에서 만나요~.

아무튼 이렇게 세 그룹을 결정하는 데만 거의 1년을 소비했다. 결정된 세 그룹을 시나리오로 완성하는 데만 또다시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시나리오 단계가 가장 어려웠다. 시나리오 이후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작업하지만 시나리오는 철저히 자기 혼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의 심정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게다가 이야기가 딱 막힐 때의 괴로움이란… 그 일을 1년 가까이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해운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영화의 팁을 살짝 공개하자면, 쓰나미는 영화 후반부에 나온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처럼 초반부터 때려부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쪼금’ 나오는 건 물론 아니다. 관객이 그 정도면 됐다고 느낄 정도로 거대한 재난이 오랜 시간 휘몰아친다. 그러니 ‘왜 쓰나미가 이것밖에 안 나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초·중반부에는 재미있는 웃음과 따뜻한 드라마도 있다. 작지만 아련한 눈물도 있다.

조그만 물방울 하나에 데이터값 엄청나더라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에는 캐스팅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해운대>는 조금 달랐다. 바로 ‘거대한 쓰나미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하는가’ 하는 CG에 대한 부분이 먼저였다. 지금도 왜 <해운대>의 CG를 할리우드의 한스 울릭과 작업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해운대>의 CG는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서 하려고 했다. <해운대>의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바로 국내의 거의 모든 CG 업체들과 직접 만났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CG 기술력이 할리우드 기술력의 90%까지 올라왔다는 사실도 알았다.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문제는 나머지 10%였다. 자동차 생산으로 말하자면 거의 모든 부분을 국내에서 작업하지만, 그 핵심이라 할 엔진을 만들 능력이 없는 것과 같았다. 아직 한국이 완벽하게 도달하지 못한 바로 그 10% 안에 ‘물’이 포함돼 있었다. 제작보고회에서도 얘기했듯 물은 CG 중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물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물결과 파도의 포말, 거기서 생성되는 미스트 등 조그만 물방울 하나하나가 개체값을 가져야 하고 그 데이터값도 엄청나다고 한다.

물론 현재 물을 표현하는 상용 프로그램인 ‘워터 플루이드’(Water Fluid)나 ‘마야’(Maya) 덕분에 부분적으로 물을 구현하지만 <해운대>와 같은 거대한 바다와 그 파도를 표현할 프로그램은 상용 프로그램에서 해결할 수 없다. 프로그램을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작단계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잘하면 될 가능성도 있지만 100% 보장하기에는 조금 무리”라는 한국 CG 업체들의 의견은 ‘결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 CG업체들의 열성과 의지는 높이 살만 했지만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생각해볼 때 결과에 대한 100% 보장 없이 너무나 위험했다. 결국 물 이외의 CG는 반드시 한국에서 하기로 결심했고 물 CG를 잘하는, 즉 100%의 보장이 있는 해외 업체쪽으로 컨택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나는 왜 한스 울릭과 작업했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세계에서 <해운대>와 같은 물을 컨트롤할 CG 업체는 서너 군데밖에 되지 않는다. 일일이 공문을 보내 그들과 만나려 했다. 일부는 우리의 CG 예산을 듣고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나는 무작정 미국으로,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그들에게 나의 진정성과 <해운대>의 시나리오를 건네며 설득했지만 그 누구도 나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 업체는 아예 대표도 나오지 않고 실무진 한 사람이 나와 물 CG는 이러저러해서 어렵다며 대충 설명만 해주고 그걸로 끝내기도 했다.

그때 한스 울릭을 만났다. 그는 <퍼펙트 스톰>(2000)과 <투모로우>(2004)에서 물 CG를 담당했는데, 할리우드에서 독립해 <반지의 제왕> 게임을 담당했다. 바로 그 <반지의 제왕> 게임의 그래픽을 한국의 게임 CG 업체가 하청받아 작업했기에 그 인연으로 연락이 닿았다. 그리하여 한스 울릭에게 <해운대>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그는 나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의기투합 했다. 사실 한스 울릭은 미국 사람이 아니라 독일 사람이다. 그 자신도 10여년 전 할리우드에 혈혈단신 입성해 수많은 불신과 의혹의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위치를 이룩해냈다. 나의 처지가 자신과 비슷해 보였는지 첫 만남에서부터 호감을 보였다.

한스 울릭과 계약하면서 두 가지를 부탁했다. 물 이외의 CG는 한국 업체에 맡길 것과 물 CG에 대한 기술 이전이었다. 어차피 예산이 넉넉지 않으니 할리우드 스탭보다는 한국 스탭을 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 쉽게 결론을 냈으나 물 CG에 대한 기술 이전은 쉽지가 않았다. 자신들만이 지닌 핵심기술의 이전은 상당히 예민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나는 물 CG에 대한 기술 이전 없이는 계약을 할 수도 작품에 들어갈 수도 없다면서 <해운대>가 아니라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물 CG에 대한 기술 이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리하여 극적으로 계약 예정 바로 전날에 한스 울릭쪽으로부터 기술 이전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물 이외 CG는 한국팀이… 외화낭비설은 오해

먼저 우리 <해운대>의 CG 작업 과정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해보자. 물 CG에 대한 핵심적인 소스는 한스 울릭쪽에서, 그외의 나머지 모든 CG는 한국의 ‘모팩’을 중심으로 ‘파워캐스트’, ‘폴리곤 비주얼웍스’ 등 한국의 세 업체가 담당했다. 한스 울릭은 한국에서 할 수 없는 핵심 물 CG의 소스를 제공하고, 모팩을 중심으로 한국 CG 업체에서 그 물 CG 소스를 받아서 합성을 비롯한 모든 공정을 주도적으로 작업했다. 물 이외의 폭파, 지진, 침수, 파괴된 건물 등 수많은 CG컷은 전적으로 한국에서 진행했다. 이 말은 CG 관련 예산의 절반 이상을 한국의 CG 업체에 집행했다는 뜻이다. 일부 네티즌과 언론에서 제기하는 ‘왜 하필 그 많은 돈을 외국 CG 업체에 맡겨서 외화를 낭비했나?’ 하는 비판은 사실과 다른 오해다.

작업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CG 업체들의 능력은 한스 울릭도 감탄할 정도였다.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한국쪽 VFX 슈퍼바이저인 모팩 장성호 대표의 활약은 눈부셨다. 미국쪽과 한국쪽은 치열한 회의를 거치면서 CG의 퀄리티에 대해 결코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미국과 한국 모두 <해운대>의 성공을 위해 한몸 한뜻으로 움직였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그 어떤 작품에 대해서건 아쉬움이 없겠냐마는 <해운대>의 CG 퀄리티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감을 가진다. <해운대>에는 500여컷의 CG컷이 나온다(일반적인 한국영화의 전체 평균 컷 수가 1500컷 내외이다). 단순 합성을 제외하고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CG컷만 100컷이 넘는다. 할리우드 재난영화 대부분이 100개가 안되는 CG컷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정도면 비교가 될까?

<해운대>를 시작하면서 한번도 이 영화가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난영화이며 전 국민과 전 영화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라고 생각해왔다. 세계시장 그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해운대>는 기대하셔도 좋다. 한국영화에서는 이제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시각적 충격을 관객에게 선사하리라고 자신한다. 이게 종착역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도전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세계시장으로의 도전이 없으면 한국영화의 미래도 없다. 관객 여러분의 많은 격려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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