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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 내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

<해운대>의 만식과 연희를 만났다. 아들이 하나 있는 홀아비지만 연희는 만식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만식은 옛날 쓰나미가 몰아치던 동남아 해상에서 연희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사람이라 늘 연희만 보면 미안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이다. 해운대의 짙은 바다 내음과 시원한 파도 소리 속에서 두 사람은 말 못할 사랑을 키워간다. 쓰나미는 바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굳은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시각적 매개체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사랑의 언약을 하는 커플이라고나 할까.

<해운대> 연희 역의 하지원

하지원은 늘 고생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지원만큼 이 악물고 악전고투하는 여배우도 드물다. 저 멀리 ‘원 톱’ 드라마나 다름없는 사극 <다모>나 <황진이>에서 겪은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함께했던 <1번가의 기적>에서는 여자 복서가 되기 위해 ‘여성스러움’은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복싱을 배운 것도 모자라 격렬한 시합장면에서는 코가 휘는 부상까지 입었다. 쉽게 말해 하지원은 작품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다. 스스로 “제가 청순가련형은 아니잖아요? (웃음) 인형 같은 배우가 되는 건 별로 매력없어요”라고 말할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하지원은 “이번 영화 캐릭터는 실제 제 모습하고 가장 많이 닮았어요”라는 식의 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늘 자신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가장 빛났으니까.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을 함께하며 오래도록 알아온 ‘절친’ 윤제균 감독은 하지원을 부를 때 장난스레 ‘하지’라고 부른다. <해운대> 캐스팅을 떠올리며 너무나 당연히 그녀부터 떠올린 윤제균 감독은 오랜만에 하지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새 영화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의 대답은 무조건 오케이였다. “<해운대>에 쓰나미가 온다니 너무 재미있을 거 같은 거예요. 무조건 한다고 했죠. 그리고 재난영화니까 당연히 제가 강인한 영웅적 여성 아니면 세련되고 도도한 연구원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무허가 횟집의 촌스럽고 억척스런 여자더라고요. (웃음)” 기대는 깨졌지만(?) 소녀가장이나 다름없는 연희는 무척 연민이 가는 여자였다. 마음속으로만 품어온 만식(설경구)과의 은근한 사랑도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예상대로 촬영 역시 난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부산 사투리를 완벽에 가깝도록 끌어올리는 게 무척 힘들었다. 고향이 부산인 윤제균 감독은 사소한 억양이라도 허투로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하지원이 연기하는 거칠고 순박한 연희의 표정과 말에서 생생한 사람 냄새가 나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배우들도 그러하겠지만 그녀가 진짜 ‘해운대 주민’이 되지 않으면 영화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투리가 힘드니 연기가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바다 울렁증’까지 생겼었죠. (웃음)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해운대 바다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게 아니라 더 갑갑한 거예요. 게다가 전 수영도 전혀 못하거든요. 그러다 말이 입에 붙고 연희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내 영화’가 됐죠. 보면 볼수록 현지인 같은(웃음) 설경구 선배도 큰 힘이 됐고요.”

불안감을 떨쳐내니 다시 촬영 자체가 즐거워졌다. 그 기분으로 <해운대> 크랭크업으로부터 몇달 뒤 박진표 감독의 <내 사랑 내 곁에> 촬영을 위해 부산을 찾았을 때는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집과 촬영장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그녀가 현장에서 기죽어 있는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재난영화라는 부담감에 대해서도 “CG가 입혀질 것을 가정하고 허공을 보며 연기하는 게 왜 그리 재밌었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웃는다. 그렇게 촬영하는 게 마치 테마파크에서 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나. 그래서 “시사회 날까지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더디 가는 느낌이 묘하다”며 “정말 관객의 심정으로 내 영화가 이렇게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란다. 그렇게 늘 앞만 보며 달리는 하지원의 에너지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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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협찬 서울메이트호텔·의상협찬 barbara bui, sheri bodell by sabatier, AETAS, FARMER·스타일리스트 김보경·메이크업 최시노·헤어 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