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읽던 이국의 모험담은 불길한 징조와 견딜 수 없는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락하는 코스만으로 이루어진 롤러코스터처럼, 남자가 되려는 소년, 아름다운 여인, 치명적인 오해, 이룰 수 없는 운명, 발작적인 쾌락, 거대한 마침표처럼 뚝 떨어지는 죽음이 쉬지 않고 휘몰아쳤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도 그렇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동시에 지극히 통속적이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던 사폰을 스타로 만든 첫 (성인용) 소설 <바람의 그림자>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바르셀로나 뒷골목 냄새가 어디선가 풍기는 기분에 코를 킁킁거리며 책 주문 버튼을 자동적으로 눌렀을지도 모르겠다. 두 책은 ‘잊힌 책들의 묘지’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그 어떤 TV연속극보다 중독성이 강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좋아했던 고아 다비드 마르틴은 우연한 기회에 소설을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의 대중소설은 큰 인기를 얻는데, 신문사를 떠난 그는 따로 필명을 지어 밤낮없이 소설을 발표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뇌에 종양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착취하던 출판사를 버리기로 마음먹는데, 그때 수수께끼 같은 출판업자가 나타나 그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큰돈을 줄 테니 일년 동안 육체와 영혼을 모두 바쳐 위대한 역사, 그러니까 “종교를 만드는 작업을 해주기를 바랍니다”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소설 청탁을 받아들인 다비드는, 그가 사는 저택과 출판업자 사이에 이상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사폰은 책을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사로잡힌 마술을 잘 이해한다. 그의 소설에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책을 구하기 위해 동네 서점으로 도망가는 소년과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펼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소녀가 등장한다. 책에 대한 사랑은 종종 사랑에 대한 갈증과 뒤섞이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섹스와 죽음, 그리고 배신이 등장한다. 다 읽고 나면 독주에 취한 기분이 들어, <아내의 유혹>을 봐도 애들 장난같이 보이겠군 싶다. 눈물이 많은 독자라면 손수건도 하나 꼭 곁에 두고 첫장을 펼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