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김행숙 시인의 시 <이별의 능력>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른다는 건 뭘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지독히 ‘사랑’하는 것처럼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독하게 ‘이별’한다. 무수한 말들을 삼긴 채 ‘손을 흔들’게 된다.
그 순간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스무살부터 시작된 8년간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자 유후용 감독은 그녀(와의 이별)를 생각하며 결심하듯 영화를 찍는다. KT&G 상상마당 이달의 단편 1월 우수작으로 선정된 <이별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거짓말 안 하고 시나리오를 두 시간 만에 쓰고, 바로 콘티 그리고, 다다음날 캐스팅하고, 다음날 촬영하고, 다음날 편집하고 끝났다.” 일주일 만에 영화 한편이 탄생했다. 이별의 능력이란 또한 이런 것이다.
영화에 자전적인 얘기가 들어 있지는 않다. 영화는 이별한 남녀, 이별할 남녀의 묘한 심리를 좇는다. 헤어진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던 영곤은 가게에 들어온 예쁜 여자에게 시선을 뺏긴다. 옛 여자친구는 그런 영곤의 모습이 우습지만 또 그녀에게 다가가 대신 말을 걸어준다. “저기 남자 애 보이죠? 제 친군데요, 그쪽이 온 뒤로 자꾸 쳐다봐서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어찌어찌 영곤과 여자는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여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과정이 흑백 화면과 고전적인 느낌의 음악 속에 담겨 독특한 질감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올드팝 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그걸 숨기고 쿨한 척하는” 요즘 사람들의 연애 태도가 “바보 같다”면서 유후용 감독은 일부러 “올드한 음악”들을 선곡했다.
감독의 감정이 제대로 이입된 인물은 여자 캐릭터다. 들쭉날쭉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요는 이렇다. “이별이란 게… 정말 사랑했던 상대라면 팔 한쪽, 다리 한쪽 떼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살아왔던 시절도 같이 떠나간다. 갑자기 뭔가 확 비어버리는 느낌. 그러니까 어떤 짓도 할 것 같고, 괜히 짓궂게 장난도 칠 것 같고, 자기 세계에 한없이 빠지기도 하고….” 이 모든 감정은 결국 이별에 직면한 사람들의 감정이다. 재밌는 건 출연한 배우들 역시 오래된 연인과 헤어졌거나 헤어질 상황이라는 거다. 전문 배우들이 아님에도 순간순간의 놀라운 연기는 숨길 수 없는 경험의 힘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별은 일단락됐다. 유후용 감독은 요즘 “사무라이가 매일 수련하듯” 하루에 한편씩 단편 시나리오를 쓴다. “취향을 찾고 싶다. 시나리오 쓰기는 일종의 체력단련이다. 체력이 됐을 때 내 몸이 정말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올여름엔 ‘명작읽기’에 나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적을 둔 그는 학생과 일반인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한예종 여름 강좌 프로그램인 ‘자유예술대학’ 수업 중 황지우 교수의 ‘명작읽기’를 들을 예정이다. 의욕과잉이 자신의 최대 단점이라면서도 이것저것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영화와 예술을 통해 “사람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