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영화들이 거의 상영되지 않는 요즘의 베를린 극장가는 한산하다. 독일은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편이지만 지난 한달간 자국영화 개봉작이 드물었다. 베를린 중심지에 자리한 포츠다머 플랏츠에 있는 영화관 시네막스에서 <환지통>(Phantomschemrz)을 보고 나오는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환지통>은 1990년대부터 남성적 매력으로 독일 여성 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기배우 틸 슈바이거가 오랜 공백기를 깨고 출연해 화제를 모은 멜로영화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나이는 26살이고 이름은 알렉산더 쉰들러다.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쉰들러씨가 조상인가보다. =하하.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 조상은 아닐 거다. 독일에선 쉰들러라는 이름이 드물지 않다.
-이 영화를 본 이유가 있다면. =영화 플롯이 논픽션을 바탕으로 했고, 틸 슈바이거와 그의 친딸이 함께 연기를 해서 관심이 갔다.
-틸 슈바이거 팬인가보다. =꼭 그런 건 아니다. 틸 슈바이거가 나처럼 프라이부르크 출신이다. 그리고 그의 변신이 궁금했다. 90년대에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를 즐겨봤다. 지금까지 바람둥이 역할을 주로 해오던 그가 이 영화에선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획기적으로 변신했다는 소문 때문에 일부러 찾아왔다.
-영화가 맘에 들었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틸 슈바이거의 연기를 본다는 점에서 좋았다. 여태까지 그는 코미디나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역을 주로 맡아오지 않았나? 이번 역할에서 그는 사고로 장애를 입고 폐인이 되기도 한다. 겉모습도 달라졌다. 원래 짧은 머리만 하던 그가 긴 머리를 하고 나왔다. 이 영화에서 틸 슈바이거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특정한 직업없이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남자다. 여자들도 원 나이트 스탠드로 가볍게 만나는 게 전부였고, 그러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실의에 빠지지만 이를 극복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사랑도 찾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뭐 그런 얘기지.
-자칫 잘못하면 아주 키치해질 수 있는 내용이다.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나쁘진 않다. 10점 만점에 6점?
-그나저나 ‘환지통’이 무슨 뜻인가. =다리나 팔을 절단한 환자가 이미 사라진 다리나 팔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라고 한다. 영화 제목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지나간 유년 시절의 아픔까지도 아우른 포괄적 의미가 아닐까. 주인공은 음주 운전를 하다가 사고가 날 뻔한 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것을 기억해내고, 아버지같이 되지 않겠다며 대오각성을 한다.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는 모양이다. =한달에 두번 정도 극장에 간다. 아시아계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