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는 모든 이가 기피하는 질문이 몇개 있다. 엄밀히 말해 그 질문들은 ‘금기시된다’기보다 ‘굳이 던질 필요 없다’는 쪽에 가깝다. 이를테면, 2000년대 초반 에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언제 개봉하냐는 질문은 던지지 말아야 했다. 어차피 ‘그걸 누가 알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게 뻔했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던져봐야 별 소용없는 질문 중 하나는 ‘쇼박스는 어떻게 될까?’이다. 쇼박스는 비교적 적은 기업 규모에도 영화 투자·배급사업에서 꾸준히 좋은 실적을 기록해왔다. 그런데도 쇼박스를 둘러싼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KT나 SKT 같은 통신업체가 인수한다는 설이 나돌았고, 몇몇 대기업과 다국적 투자자본 등이 인수한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하지만 쇼박스는 그 어디에도 인수되지 않았고, 그 질문 또한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해묵은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쇼박스와 함께 오리온 그룹의 계열사인 온미디어의 매각 협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22일 CJ오쇼핑이 공시를 통해 ‘온미디어 인수 의사가 있다’라고 밝힌 이후 양쪽은 매각과 인수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오리온그룹이 한때 미디어 사업을 주력 업종으로 선택했지만, 현재는 자금 부담을 느껴 매각작업을 벌인다고 해석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오리온 입장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투자 압박을 받는 미디어 부문을 유지하느니 매각한 뒤 확보한 자금으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쇼박스 매각설이 다시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온미디어가 CJ오쇼핑에 인수된다면, 쇼박스는 오리온그룹에서 유일하게 남는 미디어 업체가 된다. 오리온은 과거 영화 투자·배급(쇼박스)과 상영(메가박스), 그리고 이 판권을 활용한 케이블 방송(온미디어)이라는 ‘수직계열 체제’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지만, 이 시스템이 무너진 현재로서는 쇼박스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많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쇼박스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 영화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 매각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어왔다. 문제는 영화 투자·배급사가 그리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온미디어를 인수하는 CJ오쇼핑 입장에서는 계열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하는 마당에 쇼박스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 영화 투자·배급업에 관심을 가진 다른 대기업이 존재한다 해도 섣불리 쇼박스를 인수할 가능성은 적다. 한 배급사 간부는 “배급사의 자산이라면 보유중인 영화 판권과 인적 구성원 정도인데, 영화사업에 대한 전망이 아직 불투명한 상황에서 거액을 들여 인수하느니 차라리 새로 차리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한편, 당사자인 쇼박스는 비교적 평안한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솔직히 한때는 직원 내부의 동요가 심했다. 요즘 들어 진정된 편이다. 이미 투자가 결정됐던 <국가대표> <불꽃처럼 나비처럼>과 <의형제> 이외에 신규 투자작들을 속속 결정하고 있다. 이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상부의 의사도 간접적으로 전해진다”고 말한다. 이 말에 따르면 쇼박스는 당분간 현 체제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쇼박스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도 한동안은 쑥 들어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