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대기업 이름으로 시작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일명 SSM)이 들어서면서 반찬가게 하나가 문을 닫았고 청과물가게도 불이 꺼졌다. 정육점도 불안하다. 그나마 손님을 ‘유지’하는 농수산가게는 젊은 사장님이 동생 둘 데리고 500원짜리 호박 하나도 배달해주며 일요일도 없이 늦은 밤까지 목이 쉬어라 외쳐대며 장사한 덕에 지난달 가까스로 120만원을 집에 갖다주었다고 한다.
6천원대 세제를 사러 나서면서부터 고민이다. 같은 건물의 대기업 슈퍼에 갈 것이냐 아파트 이름을 딴 동네 슈퍼에 갈 것이냐. 결국 800원의 차액은 나를 대기업 슈퍼로 이끈다. 그리곤 다시 동네 슈퍼행. 같은 값이면 번거롭더라도 동네 슈퍼에서 사는 게 그나마 내 최선의 소비 활동이다. 애 요구르트에 빨대 꽂아주고 두부 한모 꺼내들고 ‘1+1’은 없냐고 괜히 묻는다. 나의 단순한 소비 행위들이 쌓여 누군가의 배를 불리고 누군가의 생업을 접게 한다는 건 정말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노릇이다. 슈퍼 주인은 여름철이 겨울철보다 매상이 훨씬 높아야 하는데 변동이 없다고 울상이다. 설상가상 코앞에 24시간 편의점 두개가 연달아 문을 열었다. 편의점 회사 관계자가 슈퍼 간판 내리고 편의점으로 바꾸라고 줄창 꼬드겼지만 “매상 오르면 지들이 가져갈 게 뻔해” 거절했다고 한다.
동네 가게들이 그야말로 ‘한방에 훅’ 가고 있다. 대형 마트들은 뒤에 익스프레스다 에브리데이다를 붙인 미니미를 만들어 목 좋은 자리를 속속 삼킨다. 한나라당과 지식경제부는 3000㎡ 이상 대규모 점포에 적용돼온 등록제를 그 직영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영업신고만으로 문을 열었던 기업형 슈퍼마켓들이 얼마나 큰 특혜를 누렸는지 짐작된다. 그러나 느슨한 등록제로는 이 돈 놓고 돈 먹는 유통업, 아니 ‘베팅업’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게 중소 상인들의 아우성이다. 1996년 유통업 개방 이후 사라진 허가제를 되살리고, 동네 특성을 고려해 최소한 매장 규모나 영업 시간을 조절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한 국회의원은 골목 상권이 무너지는 건 상인들의 ‘경영혼’ 부족 때문이라 타박해놨던데, 애가 먹고 난 요구르트 병을 그 입에 조용히 꽂아주고 싶다. 자꾸 경영혼 타령하면 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