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총에는 캐릭터가 있다" _퍼버스 역의 크리스천 베일 인터뷰
-어떻게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나. =세 캐릭터에 끌렸다. 하나는 존 딜린저, 내가 맡은 멜빈 퍼버스, 그리고 마이클 만. 마이클 만은 배우와의 의사소통에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탁월한 감독이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헤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배우와 함께한다. 그는 뭐랄까, 누구보다도 뛰어난 탐정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많은 영화에서 총을 다루는 장면을 연기했다. =서부극을 한 경험이 있어 익숙한 편이다. 옛날 총에는 캐릭터가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무기는 그 가공할 만한 위력만큼이나 총과 총 쏘는 사람 사이가 단절된 반면에 이 당시에는 좀더 그 현실적인 무게, 그 냄새가 느껴진다고 할까.
-퍼버스는 딜린저에 집착한다. 왜였을 것 같나. =글쎄. 퍼버스가 집착한 존재는 후버였다고 생각한다. 그 후버가 딜린저에 집착했고. 퍼버스가 개인적으로 원한을 가졌던 상대는 친한 동료 둘을 살해한 베이비 페이스 닐슨이었다. 딜린저는 후버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등장하는 큼직큼직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된다.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 옮겨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배우는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 캐릭터가 주어지면 금방 그 역에 몰입되는 디카프리오 같은 타입이 아니라 몰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이전 역할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지 않나. =그건 일단 물리적인 장소가 바뀌면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촬영이 끝나 집으로 가면 금방 빠져나온다.
-할리우드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 있는데, 한번쯤은 집에 혼자 앉아 와인을 마시면서 감회에 젖을 때도 있을 것 같은데. =흠. 와인보다는 맥주일 것 같은데. (웃음) 그런 적 없다. 나는 야심만만한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내가 어떤 작품을 해왔고, 미래에 어떤 모습일까를 그리지 않는다. 그런 건 피곤하다. 나는 그냥 지금 하는 작품, 다음에 할 작품에 대해 준비하고 그것만 생각할 뿐이다. 근시안적인 건가.
-조니 뎁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땠나. 당신도 그의 팬인가. =글쎄. 내 입에서 누군가의 팬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조니 뎁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이 있는 배우다. 그의 작품 선택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그와 직접 연기할 기회가 몇 번밖에 없었지만, 좋은 배우다.
"섹스신보다는 엄청나게 맞는 게…" _빌리 역의 마리온 코티아르 인터뷰
-마이클 만은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어땠나. =처음으로 마이클 만을 만났을 때, 캐릭터 이야기만 나누고 3일 뒤 스크린 테스트에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지금 이곳 포시즌 호텔로 돌아와서 원작을 읽기 시작하려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문을 열었더니 마이클 만이 보냈다는 커다란 박스가 있더라. 박스는 내가 들어야 할 음악과 봐야 할 영화, 30년대의 잡지, 신문, 인디언 역사, 리서치 자료들로 가득했다. 3일 동안에 이 많은 것들을 훑어나 볼 수 있을까 싶어 난감한 찰나에 바로 에이전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박스 받았어? 그거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 체크해야 해! 마이클 만은 정말 완벽주의자라고. 다음 미팅에서 그거 다 물어볼 거란 말이야”라면서 신신당부하더라. 또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마이클은 감옥에 복역 중인 죄수들의 아내를 만나게 했다.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남자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그들의 고통, 감정을 느껴야 했다. 스트리퍼와도 만나야 했다. 빌리는 그냥 슬쩍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남자들 중 누가 가장 돈이 많은 남자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여자였으니까. 마이클 만의 완벽주의는 바로 이런 디테일에 있다. 마이클 만은 내가 필요로 하는 캐릭터의 피와 살과 심지어는 영혼까지 공급해주는 그런 감독이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후로 변화를 실감하는가. 또한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카데미 수상보다는 <라비앙 로즈>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나인>이나 <퍼블릭 에너미>에 캐스팅된 것은 아카데미 이전이니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디카프리오와 함께 연기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결국 그 영화 덕이니까. 작품 선택의 기준은 (가만히 호흡을 고른 뒤 가슴에 손을 얹고는) 감독이 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그 필요성이 가슴으로 느껴져야 한다. 글을 읽어내려가는데, 내 피에서 무엇인가가 끓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이 있다. ‘정말 하고 싶어’라는 갈망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라거나 탁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조니 뎁과의 섹스장면은 어땠나. =섹스장면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 상대가 조니 뎁이라고 할지라도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불편해한다는 것에 대해 감독에게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힘들지 않을지 같이 고민한다. 그래서 마이클도, 조니 뎁도 특별히 내게 신경을 썼다. 완벽하게 동선이 다 짜인 상태에서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한 상태에서 촬영에 임했다. 섹스장면을 찍는 것보다는 차라리 엄청나게 맞는 장면을 연기하는 편이 훨씬 낫다.